독자마당

[새싹마당] 성호긋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김요섭ㆍ대구 황금본당ㆍ협성중 2
입력일 2019-10-02 16:13:41 수정일 2019-10-02 16:13:41 발행일 1987-06-14 제 1559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 수녀님을 보고 떳떳해져
나는 저녁기도를 꼭 하고 잔다. 만약 어떤 이유로 못하게 되었다면 다음날 아침에라도 저녁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침에는 아침기도를 외지 못하기 때문에 묵주기도를 학교에 도착 때까지 버스 안에서나 길을 걸으며 한다. 그러나 누가 보고 이상히 여길까봐 성호를 엉망으로 긋는다. 머리를 어루만지듯 하다가 다시 양쪽 어깨를 차례대로 건드리고 손을 비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성호를 했던 것이다. 내가 천주교나 주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누가 묻더라도 천주교신자이고 주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호를 잘 긋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학교에서의 점심시간때도 식사 전 기도를 아이들이 적은 곳으로 가서 성호를 엉망으로 하고 기도드린다. 집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어떤 때는 죄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되뇌지만 손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전히 성호를 대강 긋고 있을 때의 하교때였다. 버스 속에서 회색 수녀복을 입으신 수녀님을 보았다. 친근감이 들고 반가왔다. 수녀님은 곧 좌석에 앉으실 수 있었다. 수녀님께서는 앉으시더니 성호를 자연스럽게 그으셨다. 주위의 눈은 어떻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성호를 그을 때보다 더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녀님께서는 주님을 지극히 따르는가 보다.

이 일 후에 나는 버스 속에서나 친구들 앞에서도 떳떳이 성호를 그을 수 있게 되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김요섭ㆍ대구 황금본당ㆍ협성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