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교회당국 정교분리불구 민족동질성 인식, 독립군자금 모금 앞장

허남
입력일 2019-05-08 13:33:42 수정일 2019-05-08 13:33:42 발행일 1990-03-04 제 169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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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항일투쟁 재조명 절실
황해도 윤예원 신부 등 활동 두드러져
일제치하에서 외국선교사들이 주도해온 한국교회가 표면적으로는 3ㆍ1운동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재평가 및 연구、교육과 홍보가 요청되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업적이 최근 몇년사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타교파가 3ㆍ1절을 전후해 특별행사를 갖는 것과는 달리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움직임이 없고、실제로 대부분의 신자들이 당시 교회는 만세시위나 항일독립투쟁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요청은 한국교회와 민족의 동질성을 연결하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시급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항일민족운동과 관련해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미 널리 알려진 안중근(토마) 의사를 비롯「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105인 사건」의 이기당、「안악사건」의 안명근、「군자금조달」의 장규섭、간도의「의민단」등이 드러나고 있으며、3ㆍ1운동 당시에는 신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신자들이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운동을 전후해 중심인물로 활동한 이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평신도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중 많은 이가 항일독립투쟁에 큰 몫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 3ㆍ1운동을 전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및 이들에 대한 올바른 위상정립의 필요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항일독립투쟁과 관련、드러난 성직자는 정규하 신부(가톨릭신문 90년 2월 25일자 11면)와 안성본당 초대주임 공베르 신부、황해도 은율본당 윤예원 신부 등인데 윤예원 신부의 항일독립투쟁 사실은 한국교회사 연구소 측에 의해 이미 확인 작업이 끝난 상태로 현재까지는 항일독립투쟁한 성직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사제로 평가되고 있다.

황해도 은율본당 3대주임、윤예원(尹禮源ㆍ토마스ㆍ1886~1969) 신부는 일제치하 당시 교회당국의 철저한 「정교분리」정책에도 불구하고 본당 신자들과 동료사제에게 민족의식 고취 및 3ㆍ1운동에 가담토록 한 사제이다.

뿐만아니라 윤신부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보내온 권고서 5백장을 전달 받아 배포하는 한편「은율」「해주」등 황해도 일원에서 독립군자금 모금운동을 한 사제이기도 하다.

윤신부의 독립운동 사실은 당시 황해도 장연본당 김명제 신부가 주교에게 보고한 서한에 간접적으로 잘드러나고 있다.

김신부는 서한에서(1919년 12월 29일자 서한)「윤신부는 벌써 오래전부터 조선독립에 대하여 위태롭게 행동을 합니다. 그로 인해 내 본당에서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 매우 곤란한 문제가 야기됩니다」고 보고했다.

또 서한에서(1920년 2월 17일자) 김신부는「윤신부가 나에게 강권하면서 말하기를「당신도 나와 같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해야하며 당신 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에게도 그런 사상을 주입시켜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적극 행동을 못하겠거든 적어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막지는 말아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윤신부는 공소마다 돌아다니면서 교우들을 선동했을 뿐 아니라 군자금까지 모금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은율성당을 짓느라고 많은 빚까지 짊어졌지만 40원을 독립운동비로 내놓았으니 너희들도 가급적 돈을 많이 내놓으라」고 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같은 윤신부의 활동은 후에 뭐뗄 주교로부터 제지받아 드러내놓고 하지못하게 됐지만 암암리에 독리운동에 계속 간여하였고、8ㆍ15직전 강원도 대화본당을 맡고 있을때는 미사강론 중 일경이 임검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천황을 귀머거리、소경이라고 공격해 일주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공베르 신부(JㆍGombert)도 외국인 성직자로서는 드물게 만세시위에 가담한 자 및 군중들을 성당안에 숨교주었고、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사제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차기진씨는「당시 성직자와 신자들중의 많은 이가 교회당국의 철저한 정교분리정책에도 불구、민족의 동질성을 갖고 이 땅의 가장 고통스런 문제에 함께 했었음에도 이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계속되지못해 이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위상을 재정립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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