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본당에서든지 이맘때가 되면 부활절 준비에 정신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부활절은 아무래도 성탄절만큼 재미가 있지 않은 것은 저만의 느낌이 아닌 듯하더군요. 성탄절은 이어서 연말과 연시가 따라오기 때문에 신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데 비해 부활절은 대개 중간고사가 따라와 신나고 재미난 분위기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계란을, 그것도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맘때가 제 철 만난 듯해서 무척 기쁘답니다. 저희 본당뿐 아니라 대개의 본당이 부활 계란을 준비하면 선물용으로 완성되는 것이 반, 그리다 깨지거나, 잘 안 깨지면 그리다 깨뜨려서 없어지는 것이 반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맘때면 성 금요일에 계란을 먹는 게 된다 안 된다 해서 나름대로 신학적인 논쟁이 펼쳐지기도 하지요.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부활절 준비였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부활절 계란을 삶아야 하니까 나오라고 해서 깨진 계란이라도 얻어 먹을까 부리나케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날 제게 맡겨진 업무는 계란을 삶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의 제 미술 솜씨를 아는 교감 선생님이셨기에 그리는 근처에도 못 오게 주방장(?) 자리를 맡기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결정은 잠시 후 엄청난 후회로 돌아올 것입니다만, 어쨌든 주방장이 된 저는 우선 물을 끓였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리고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끓자 어린이 한 명에 2개씩 돌아갈 약 6백 개의 계란을 좌르륵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잘 익도록 장작불을 더 지폈답니다.『이제는 다 익었겠지』하는 생각에 불을 낮추고 계란을 꺼내기 위해서 솥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입니까? 처음에 저는 무슨 기적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6백 개의 계란이 커다란 공룡알로 변하는 기적 말입니다. 그때까지 계란 삶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저는 라면 삶듯 계란을 삶았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날 저희 본당 교사는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한 패는 동네 시장으로, 구멍가게로 계란 사러다니는 패와, 또 한 패는 커다란 삶은 계란 뭉텅이를 놓고 껍질 발려 가면서 삶은 계란 먹는 패로 말입니다. 저는 어느 쪽이었냐구요? 저는 이쪽저쪽도 아닌 팔린 쪽이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는 부활절만 되면 계란 삶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원천봉쇄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부활절을 위한 준비로 그림을 연구해 보고 노력해 보았습니다만 그 역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그리는 것보다 그리다 떨어뜨려서 깨뜨리거나 그리다 망쳤다고 깨 먹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도 알고 보면 음식 솜씨도 심하더라구요! 어쨌거나, 누가 뭐래도 그 부활절에 껍질 골라가면서 먹은 계란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