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특별기고] 일본 신자발견 150주년을 맞아 (상)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일본 나가사키대교구장) ,번역 이건숙 수녀(예수성심시녀회 나가사키
입력일 2015-03-10 03:57:00 수정일 2015-03-10 03:57:00 발행일 2015-03-15 제 293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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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박해에 ‘남은 자’ 기념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
3월 17일 일본 신자발견 150주년을 맞아 나가사키대교구장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가 ‘신자발견은 기념해야 할 일본교회의 사건’ 주제 기고문을 보내왔다. 일본 신자발견은 260년간 극심한 박해 중에도 믿음을 지켜온 ‘가쿠레 기리시탄’(잠복 그리스도인)이 드러난 사건이다. 본지는 타카미 대주교의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기념하다란 말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여 지금, 여기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현실의 것으로 재조명해 보는 것이다. 신도발견 역시 그러한 사건이다.

지금부터 150년 전인 1865년 3월 17일 12시경, 10명 정도의 우라카미 기리시탄들이 오우라 천주당의 프티장 신부를 찾아가 같은 신앙을 갖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당시 오우라성당은 축성을 끝낸 뒤였습니다. 기리시탄은 포르투갈어 Christao(그리스도교 신자)를 음역한 말입니다. 이 사건을 ‘신자발견’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일본 가톨릭교회의 ‘특별한 날’입니다. 그리고 ‘세계종교의 기적’이라 일컬을 정도로 전 세계 그리스도교인들을 놀라게 한 역사적인 날(P. 쥬르네)입니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선교를 시작한 후 26분이 순교하는 등 일시적 탄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일본 안에 확산되었고 현지인 사제도 배출되었습니다. 17세기 초 일본의 기리시탄은 40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614년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엄격한 금교 정책으로 많은 순교자가 생겼고, 기리시탄의 모습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나가사키 현의 우라카미, 소토메, 고토, 히라도 그리고 후쿠오카 현의 이마무라와 구마모토 현의 아마쿠사 지역에는 몰래 신앙을 지키며 전수해준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본교회에서 말하는 ‘남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교회는 이 사건을 기념해야만 합니다.

박해의 결과로 기리시탄이 한명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메이지 시대 이후 선교사들이 입국해 그리스도교를 전한다 해도 사법 또는 사교로 간주되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겉으로는 불교신자 행세를 하면서 몰래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해온 ‘잠복 기리시탄’들이 있었기에 교회 역사가 이어지고 일본교회는 부활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신자발견 이후 소토메와 고토 등의 기리시탄들은 계속해서 오우라 천주당의 사제를 찾아가 신앙을 드러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일본교회의 핵심인물이 되었습니다.

1614년 2월 도쿠가와 하데타다 쇼군은 배척 기리시탄문과 사제추방령을 전국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후 현상금 제도와 5인 제도 그리고 성화 밟기와 불교입적제도 등으로 기리시탄을 긍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기리시탄 샤슈몬이라는 언어 자체가 ‘지명수배자’란 의미였습니다. 지명수배자라는 불안한 상태로 살면서 불교신자로 위장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교 성화를 밟아야했고 집에 와서는 ‘콘치리상’(통회의 기도)을 외우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야했습니다. 이 무거운 부담을 느끼면서 7대에 걸쳐 불변의 신앙을 필사적으로 전하고 또 지켰습니다.

그들 덕분에 새로운 역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리시탄 번영의 시대에 들어 복지활동과 신앙생활의 향상을 위해 ‘자비의 조’ ‘산타 마리아 조’ 등의 형제애 또는 신심회가 만들어 졌습니다. 박해가 심해지자 신심회는 순교로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양성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서로 도우며 성직자 없는 교회를 보충하는 조직으로 바뀌어 갔던 것입니다.

각 마을에는 공동체 책임자인 쵸가다와 세례 담당자인 미즈가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는 미즈가다의 보조자가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역할이 연계되어 공동체와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켰습니다. 쵸가다는 교육을 책임졌습니다. 1592년 아마쿠사에서 발간된 그리스도교 교리서인 「토치리나 기리시탄」의 내용과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생명과 바꾸어도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을 교육시키고 전승했던 것입니다. 또한 매년 예수 성탄과 부활 대축일을 알리는 1년 전례력을 만들었고 기도와 전례를 통해 신앙을 계승해 왔습니다.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일본 나가사키대교구장) ,번역 이건숙 수녀(예수성심시녀회 나가사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