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 아침이었다. 집 가까이 있는 어린이 소공원 옆에 빈땅이 있어 3년째 채소밭을 일구는 재미를 맛보고 있는 터라 그날도 오후에 비가 온다기에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해 밭을 일구러 공원 쪽으로 가는데 공원 안 잔디밭에 흰 미사보를 머리에 쓴 사람들이 가득히 앉아 있었다.
어느 성당에서 아침 일찍 야외 미사라도 드리려 왔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개신교회 사람들이 예배를 보고있었다. 깜짝 놀랐다. 개신교회에서 예배를 보면서 여자 신도들이 미사보를 쓴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내 눈앞에 그런 일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개신교의 목사가 신부님이 착용하는 로만 칼라를 착용하고, 그들 예배에 가톨릭의 성체성사를 흉내내어 영성체를 한다더니 이젠 미사보까지 그들이 가져갔다.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가톨릭의 일부 젊은 여자 신자들이 쓰지 않는 미사보를 개신교회가 가져갔구나!」하는 다분히 자조적인 느낌이었다. 혼자 쓴웃음을 지으며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긴 기도를 하고 예배를 마쳤다. 여신도들은 미사보를 정성스레 접어서 가방에 넣고는 함께 온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 날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 날 내가 본 개신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였고 모든 개신교회가 다 예배 때 미사보를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고 생각하면서도 가톨릭의 고유한 전례의 한 모습을 도둑 맞은듯하여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가톨릭의 일부 젊은 여자 신자들 가운데는 미사 때 미사보 쓰기를 기피하는 현상을 보는데 무언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교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잘못 되어 가는 교회의 모습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왔던 터라 그날의 충격이 더 컸다.
미사보는 보기 좋으라고 쓰는 것이 아니다. 정녕 젊은 여자 신자들이 미사보를 버렸다면 그걸 개신교의 한 교회가 가져간들 어떻게 탓할 것인가!
인터넷에 올라있는 미사보에 대한 어느 신부님의 글을 옮기면서 미사보 쓰기를 마다하는 일부 여자 신자에게 고린토 1서의 말씀(11, 2~16)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 미사보를 쓰느냐? 하는 의미 정도는 알고 쓰면 좋을 듯 합니다. 유다인에게 있어 여자가 쓰는 너울은 자신이 결혼한 신분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남편에 대한 순종을 상징했습니다. 로마에서는 약혼한 순간부터 붉은 너울을 씀으로써 자신에게 남자가 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렇게 여자의 너울은 한 남자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세상 여자의 너울이 한 남자와의 혼인을 드러내는 표지라면, 동정녀의 너울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드러내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미사보는 동정녀나 수도자의 너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교회 혼인을 드러내는 표지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알고 미사보를 쓰면 좋겠습니다』
-이승희(디오니시.경북 경산시 임당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