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사’의 권위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이 칭호의 의미는 학문적 성취가 크다거나 그 영역에 통달했다는 것은 아니다. ‘석사’가 그저 “아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구나”하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면, 박사는 엄정한 학문적 자세와 태도를 견지하고 이뤄낸 첫 성과일 뿐이다. 그런데 자신의 학문 영역에 대해서 잘 안다는 의미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고백과도 다르지 않다. 종종 박사들은 공부 외에 다른 것에는 오히려 무지한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든 한정된 능력을 갖고 있기에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박사들이 그 점을 잘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이 분은 박사이시구나 하고 감화를 받을 때는 겸손한 박사를 만날 때이다.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소신과 확신을 지니지만, 일단 자기 영역을 나서면 겸손하게 무지를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보일 때이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박사’에 대한 신뢰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진 듯하다. 박사가 박사가 아니라 사기인 경우가 많다. 매번 새로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면 으레 나오는 추문이 바로 논문 표절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마련한 ‘인문 사회과학 분야 표절 가이드라인’에는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할 경우 표절이라고 규정하고 있단다. 일단 언론에 ‘의혹’이라고 보도되는 논문들은 대부분 이 조건을 초과달성한다. 표절이 단어 수준이 아니라 문장에, 쪽 수준이고, 출처 없는 인용들이 난무하는 것은 기본이다.
필자가 미국서 잠시 공부할 때, 그 많은 레포트들을 쓰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것은 세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다. ‘여섯’이 아니라 ‘셋’이다. 똑같은 단어를 세 단어 이상 연달아 사용하면 표절이고 일단 교수한테 걸리면 학과장에게 보고가 되고, 전적으로 실수 혹은 필연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적까지 각오해야 한다.
이런 저런 자료를 참조하고 각주를 달고 어쩌고 하다보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자료들의 내용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세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을 사용하게 될 개연성이 꽤 있다. 그래서 교수들은 첫 강의에서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행위인지를 강조하고, 표절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학부에서부터 ‘paraph
rase’(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다)를 연습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 때문이다. 즉, 똑같은 내용이라도 ‘세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같은 내용을 다른 단어와 문장 구조를 사용해서 바꿔 말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한다. 세 단어도 그렇게 취급받는데, 하물며 무려 여섯 단어에 걸쳐 일치된 연쇄 표현을 했다면, 그것은 의혹이 아니라 물증이다.
아무리 저명한 학자라도 일단 남의 학문적 성과를 고의든 실수든 도둑질하면 그의 학문적, 도덕적 권위는 회복할 수 없다. 대학생들에게조차 적용되는 그 엄정한 룰에 대해서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안이할 정도로 관대한가? 오타까지 베낀 논문들이 심사를 통과하는 것을 보면, 심사를 하는 교수와 학자들의 권위조차도 의심스럽다.
학문이 진리를 말하는 것임을 믿는다면, 학문의 전당에서 이뤄지는 이 거짓은 모든 판단의 가장 기초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무런 다른 흠집이 없다고 해도, 논문을 거짓으로 썼다면, 그 사람의 도덕성은 공직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 자신에게 그런 흠집이 있다면, 권력, 경력과 공직을 탐하지 말고 그냥 하던 일이나 계속하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남들에게 알리지 말고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