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찡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인생의 진솔함이 그랬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그 인생이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지(紙)) 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티찌아노 테르짜니 씨는 바람이 부는 2004년 어느 봄날,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의 산골마을 오르시냐의 들녘에서 아들과 마주 앉았다. 영화 제작자인 아들은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고 이곳에 왔다.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던 테르짜니 씨는 “매일 한 시간씩 같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편지에 썼다. 책 「네 마음껏 살아라」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들과 아버지가 몇 달 동안 나눈 사적인 대화 형식이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베트남전쟁, 캄보디아 내전, 중국의 개혁 등 굵직한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생생한 증언들이 삶을 정리하려는 한 노인의 관조 속에서 새롭게 채색된다. 죽음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제가 어떻게 살기 원하세요”라고 묻는 아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 그냥 네 마음껏 살아라.”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 대표적인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함께 쓴 「인생수업」도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도 같다. 그 수업들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 관계와 관련된 단순한 진리들을 배운다.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에게서 전해 들은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적 설교보다도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우리가 이 지상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따라서 너무 늦을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들 가운데 하나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들은 삶에 ‘새롭게’ 눈을 떴다. ‘마음껏 살아라’는 아버지의 말도 지나온 삶에 대한 애정과 감사, 행복함의 다른 표현이리라. 부조리하고, 하찮고, 무의미한 것 투성이인 삶에 위축되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곧 사순절이다. 작년 2월 우리 곁을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도 맞이한다. 김 추기경께서 남기신 마지막 메시지가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용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