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하룻길 걸으며 / 이희옥

이희옥 (노엘) 시인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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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서울에 가면 자주 드나들던 서점에서 우연히 첫 산문집을 낸 친구의 책을 접했다. 친구가 홀로 남해안에서 3개월간 머물면서 일기처럼 쓴 내용이었다.

나는 남해안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남해안의 사람들과 섬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곳 섬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라고 얼핏 들었는데, 그래서 어느 섬에는 지금도 공소가 남아 있다고 하던데, 하고많은 섬 중에서 유독 그 조그만 섬에 공소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왠지 마음이 끌렸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적에 친정아버지를 병간호했었다. 친정아버지께서는 석 달 동안 서울특별시립 은평병원에서 치료받으셨는데, 그곳 뒤편에도 쓸쓸한 공소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공소 뒤안길의 계단 아래 작은 성모상을 떠올리곤 한다. 빈터와 성모상, 이 두 개의 이미지는 자꾸만 내 가슴을 흔든다.

왜 이렇게 됐을까. 현실적으로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때는 어쩌면 나 자신이 주머니 속에서 묵주를 굴리고 한없이 나 자신과의 다툼을 견뎌야 했던 시간일지 모른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나 자신과 다투는 그 시간이야말로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그 빈터에서 말 없는 성모님이 서 계신 자리를 한없이 돌았던 그때,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또 다른 나로부터 ‘견딤’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건조한 황야로 나가는 길은 낯설고 험난하다. 나는 그러한 이유로 빈터를 찾아가게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저 남해안의 쓸쓸한 섬은 나의 빈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황량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또 하나의 나를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지혜로운 스승들은 말한다. 사는 것처럼 살려면 ‘내면’을 잘 살펴보라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제시하고 영적인 신호와 느낌, 누군가 스치듯 던진 말 한마디, 책에서 읽은 짧은 글귀, 생각지 못했던 만남이나 사건 등을 관찰하며 예민해지라고. 마음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자신의 삶 어떤 것들에 빛이 드리웠는지 보라고. 하지만 나는 권태와 무기력, 유리 조각 같은 언어 속에서 미쳐가는 말들과 ‘망상’에 빠지곤 한다.

말도 안 되는 밤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걸어오는 나를 정면으로 투박하게 들이댄다. 나는 충돌하면서 깨지고 변화하는 것에 스스로 눈을 뜨게 된다. 바쁜 일상에 묻혀 방향 없이 노도 위에 떠다니는 한낱 무의미한 작은 섬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내가 오로지 주님을 찾는 이유와 주님을 만나는 무한한 방식이 여기에 있다. 근심하는 문제들, 피하고 버려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안에서 태어나는 존재물들은 내 삶의 무늬고 내 얼굴이다. 그러니 나를 찾아가는 방향은 언제나 주님이 서 계시는 그 자리다. 나라고 하는 것들을 안팎으로 비우고, 나를 혼쭐나게 뒤집어 놓으시더라도 나는 주님을 믿는다. 그렇기에 내 귀는 웃고, 내 손은 핏줄이 된다. 오늘도 주님은 뭐라고 내게 말씀하신다.

어서, 지금 바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희옥 (노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