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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평신도 희년’과 한반도 평화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8-21 수정일 2018-08-21 발행일 2018-08-26 제 310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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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68년 창립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50주년을 맞아 주교회의가 승인한 ‘평신도 희년’이다. 레위기에 따르면 ‘희년’(禧年)이란 땅과 집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들이 해방되며, 빚이 면제가 되는 해다. 즉 ‘희년’은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루카 4,18-19)하는 때다.

그렇기에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올해가 ‘평신도 희년’으로 선포된 것은 오묘한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이날이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 된 것 역시 하느님의 오묘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성모 마리아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해방을 굳건하게 믿음으로써 제자들과 교회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가 승천한 날이 우리 민족에게 광복절이 됐다는 것은 분단으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커도 하느님이 우리 민족의 구원과 해방, 즉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올해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에서 다음 달로 예정된 제5차 남북 정상회담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평화가 경제’이고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광복’이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분단된 우리 민족이 ‘희년’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특히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 따라 오는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린다. 이 역시 ‘희년’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평신도 교령’에 따르면 평신도는 ‘신자이며 시민’(5항)으로서 ‘가정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제도와 국제적 기구들이 공동선에 기여하고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도록 행동’(7항)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 희년’에 더디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움직임에서 우리 평신도들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희년’을 말씀하신 것은 ‘희년’이 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평신도 희년’이 전대사를 받는 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반도 공동체를 위해 평신도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모색하는 때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평신도 희년’을 마무리하는 11월의 ‘평신도 주간’에 평신도들이 직접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평신도 선언’ 발표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