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9) 김정신 건축가

정리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24-02-27 수정일 2024-02-27 발행일 2024-03-03 제 338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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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하느님 드러내는 곳… 지금까지 40여 개 성당 지었습니다”
명동대성당 실측 계기로 영세
건축은 4차원… 햇빛·음향 등 고려
성당은 전례까지 생각하며 설계

건축학도가 된 화가 지망생

저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제 외할머니께서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중고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그림을 곧잘 그리니까 물감을 비롯해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많이 사주셨어요. 당시엔 귀했던 큰 팔레트를 사주셔서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진주 개천 예술제에도 나가고, 지금은 세종대인 서라벌예술대학에서 하는 미술 실기대회에 부산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을 준비할 때에도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집안에서 미술대학 입학을 반대했어요. 당시 아버지께서 시 교육위원이었는데, “취미로 미술을 해도 좋지만, 남자가 미술가로 사는 것은 안 된다”고 강하게 만류하셨어요. 저는 외아들이었기에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미술하고 가까운 게 건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건축을 하겠다 마음 먹었죠.

다행히 당시 입학 커트라인이 낮았는지 서울대 건축학과에 합격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취미로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당시에는 수채화를 주로 그렸었죠. 그런데, 밑그림을 그렸을 때는 좋았는데, 색칠을 하고 나면 그림이 지저분해지는 거예요. 컬러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면서 대학원 석사 논문으로 우리나라 단청에 대해 썼어요. 당시 단청 색깔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전혀 없었어요. 전국의 단청장이들을 찾아다니며 이론화시켰죠.

우연한 기회에 받아들인 신앙

대학원 졸업 후 단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단국대가 한남동에 있었는데요,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당구장 이런 데에만 가는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뭔가 자극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는 건물 실측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명동대성당을 찾아갔어요. 좋은 건물을 학생들 손으로 실측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저는 신자가 아니었어요. 높은 곳에 올라가 추를 길게 내려뜨려 실제 길이를 쟀는데요. 종탑에 올라가려니 못 올라가게 했어요. 본당 신부님은 어려워서 못 만나고 원장 수녀님을 찾아뵙고 이래저래 설명을 드렸죠. 그랬더니 수녀님께서 제 신분증을 보시더니 저 혼자 올라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대신 예비신자교리반에 들어가 교리공부를 하라고 하셨어요. 당장 급하니 “네, 하겠습니다”하고 종탑에 올라갔죠.

그러고는 진짜 예비신자교리반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1981년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예비신자교리반에 600명 정도가 있었어요. 한 달쯤 지났는데, 당시 명동본당 보좌였던 배갑진 신부님이 저를 부르셨어요. 예비신자들을 위해 봉사를 하라더군요. 예비신자교리반에 여러 개의 반이 있었는데, 그중 한 반의 반장을 시켰어요. 그러더니, 또 총봉사자도 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세례를 받았어요. 당시 교회는 200주년 기념사업에 정신이 없을 때였어요. 그때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던 고(故) 최석우 몬시뇰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우리나라 교회 건축 사진전을 열고 싶은데,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어 오면 그 밑에 해설을 달아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사진만 보고 해설을 붙일 수가 있나요? 사진작가를 따라다니며 전국의 성당들을 둘러봤어요. 사진을 찍을 뿐만 아니라 관련 역사 자료도 모았죠. 건축가인 제게는 큰 기회였어요.

김정신 건축가가 처음으로 지은 성당인 영암본당 시종공소 성당 전경.

김정신 건축가가 처음으로 지은 성당인 영암본당 시종공소 성당 내부.

본격적인 성당 건축의 길로

성당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몸에 무리가 왔어요. 간염에 걸렸지 뭐예요. 담당 의사는 완치되려면 10년은 걸릴 거라고 얘기했어요. 몸을 추스르느라 그때까지 성당 설계는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 가톨릭신문을 보신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 한 분이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전라남도 영암에 있는 성당 설계를 해 달라고요. 제가 영국 교환교수로 1년을 가게 됐는데, 출국 한 달 전이었어요. 설계는 못하고 성당과 사제관 스케치만 그려드리고 영국으로 갔어요.

1년 뒤 돌아왔는데, 신부님께서 사제관만 지어놓고 성당은 안 짓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렇게 광주대교구 영암 시종공소 성당이 제 첫 작품이 됐어요. 이어서 광주의 진월동성당을 지었고, 계속해서 영광 순교자기념성당도 짓는 등 거의 1년에 한 개씩 성당 설계를 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약 40개의 성당을 지었어요. 특히 수원교구 송현성당은 제게 가톨릭미술상 수상의 영예를 주었죠.

저는 기회가 날 때마다 교회를 향해 ‘쓴소리’를 하고 있어요. 명동 서울대교구청 신축할 때 서울시 문화재위원으로 과도한 개발을 반대했어요.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서였죠.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건축할 때도 그랬고요. 대구대교구 N성당 원형복원을 추진했지만 성당과의 의견 불일치로 중간에 사퇴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아쉽죠.

그림은 2차원이고, 조각은 3차원이에요. 그런데 건축은 4차원이라고 그래요. 아침과 낮 햇빛이 쏟아지는 방향에 따라 건물의 느낌이 다르고, 사람이 모여 있을 때를 생각해야 하고, 음향까지 다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해요.

특히 성당은 믿는 이들이 공동체로 모여 하느님을 섬기는 곳이에요. 전례라는 기능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이죠. 지금까지 절두산순교성지 성당이나 혜화동성당 이후 이를 능가하는 성당이 아직 없는 것이 아쉬워요. 건축가의 능력뿐만 아니라 교회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일이죠.

광주대교구 영광 순교자기념성당.

광주대교구 홍농성당.

정리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