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안중근과 자캐오 / 정민 안드레아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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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13년 전 일입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擊殺)합니다. 안중근은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일제에 잡혀 사형 집행을 앞둔 그는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그의 청원에 빌렘 신부가 응했습니다. 빌렘은 어린 안중근의 세례 신부였습니다. 한편, 조선대목구(代牧區)장 뮈텔 주교는 ‘하얼빈의 거사’를 교리상의 ‘죄악’으로 단정했습니다. 게다가 주교는 안중근에게 성사를 준 빌렘 신부를 중징계 했습니다. 다행히 84년이 지난 1993년 8월 21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안중근 추모 미사에서,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며,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의) 과오에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고 강론했습니다. 저는 김훈(아우구스티노) 선생의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 2022)을 읽고, 알았던 역사와 의외의 사실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김훈은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159쪽)고 씁니다. 그는 총구 반대편의 생명 또한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흔들리고 머뭇거렸을 것이라고 안중근의 이면을 간파합니다. 안중근은 검찰 조사에서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221쪽)고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빌렘 신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는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272쪽) 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김훈 선생은 신앙인 안중근의 영적 갈등과 화해에 주목합니다.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린 복사(服事)의 추억마저 가진 작가의 남다른 시선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훈이 이순신을 다뤄 쓴 소설 「칼의 노래」와 우륵의 이야기인 「현의 노래」에 이어, 안중근의 서사인 이 소설의 제목이 ‘총의 노래’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중근의 총은 이토를 명중시켰으나, 쏜 자는 당초 쏘려던 과녁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의구심으로 쏜 다른 총탄을 맞은 이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안중근은 이를 “감사한 일”(268쪽)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순신의 ‘칼’이나 우륵의 ‘현’처럼 안중근의 ‘총’을 마냥 ‘찬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 살상력.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서 ‘일관되게’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설 곳곳에서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가 ‘죄가 되지 않음’을 거듭 말하는 것도 그 반증입니다. 단호하지 못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연중 제31주일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며 ‘죄인’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십니다. 안중근이 빌렘신부에게 한 마지막 고백은 뜻밖에도, ‘뜻’을 이루도록 ‘잘 맞아떨어진’ 일상이었습니다. 안중근은 “이 복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268쪽)라며 그 ‘작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아마도, “기쁨 속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자캐오의 심정과 같습니다. 안중근이야말로 사람의 아들이 구원하려는 ‘잃은 이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