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차라리 염치없는 기도 / 임선혜

임선혜 아녜스 소프라노
입력일 2022-07-20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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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어둠이 깔려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면

이때야말로 네 안의

믿음의 등불을 밝힐 때란다.”

오래전 한 지인 수녀님께서 SNS에 올린 이 글이 맘에 따스하고 촉촉이 닿았습니다. 가끔 이런 묵상 글을 따로 보내 주시기도 했는데,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저의 어려운 마음을 혹시 알고 계셨나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곧 어지러웠던 마음에 갈피가 잡히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해야겠구나!’ 하고요.

네, 부끄럽지만 저는 종종 기도를 잊고 삽니다. 게으르다 못해 말이죠. 교회 내 매체에서 저를 보시고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도 열심히 한다 철석같이 믿고 아껴 주시는 분들께는 배신감을 안겨 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공연들과 연주 여행 중에도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는다 칭찬을 해 주시지요. 공연을 앞두고 번거롭고 시간을 쪼개야 하는 일임은 사실이지만, 행여나 제가 주일을 안 지킬까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려 겨우 다녀올 때도 많습니다. 막상 가면 잘했다 싶으면서도요.

늘 묵주 반지에 묵주 팔찌까지 하며 천주교인 티를 팍팍 내고 다니지만 부끄럽게도 이를 기도에 사용하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름답고 정성 담긴 묵주를 자주 선물 받고, 기념할만한 특별한 묵주를 사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5단 묵주 하나는 꼭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 집을 나서지요. 하지만 이 묵주 역시 바깥 구경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할 때도 많아요. 그러니 제가 매일 꼬박꼬박 하는 기도는 단 하나, 식사 전·후 기도뿐인가 봅니다. 그마저도 누가 쫓아오는 듯 고속으로 해치울(?) 때가 많고요.

그러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나, 제게 또는 가까운 이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구슬을 이은 실이 늘어져라 묵주를 돌리고, 아는 기도란 기도는 다 외웁니다. 또 촛불을 켜 놓고 엉엉 울며 기도를 하지요. 언젠가도 마음에 참 힘든 일이 있어 잊고 있던 기도를 다시 시작하며 수녀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어요. 꼭 저 힘들고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얼마나 염치없다 하실까요.”

수녀님이 그러시더군요. “아녜스! 나는, 정말 아프고 힘든 일이 생겼는데도 하느님을 찾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을 때 하느님을 잊고 있는 것보다 말이야. 조금 서운해하실 수는 있겠지만 아녜스가 행복한 걸 흐뭇하게 바라봐 주실 테니까.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면, 하느님께마저 의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큰일이야? 그러니 힘들면 매달리고 나 좀 봐 달라고 떼를 부리고, 그건 너무 다행스럽고 잘 하는 일이야!”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나 모릅니다. 그래도 진짜 그럴까 싶어 혼자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힘들 때만 하소연하러 저를 찾아요. 사랑하는 친구이니 토닥이며 위로와 도움이 되어 주려고 애를 쓸 거예요. 그런데 분명 지금 이 친구가 힘들다는 걸 아는데 도무지 연락도 안 받고 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 있다면? 저는 몹시 걱정되고 슬프기까지 하겠지요. 사랑하는 친구에게 해줄 것이 없어서.’

수녀님 말씀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흐린 날이 닥치면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맘껏 염치없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맑은 날들을 지내다가 게으른 기도 생활이 맘에 찔리면 중얼거리곤 하죠. “저 지금 하느님 까먹은 거 아니에요!”^^

임선혜 아녜스 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