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12년째 구산성지서 봉사 중인 이혜옥씨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2-04-13 수정일 2022-04-13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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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 삶 보며 잃었던 신앙 찾았어요”

 1987년 세례받고 수년간 냉담
 구산성지 순례 후 믿음 되찾아
“다른 봉사자 통해 열정 배워”

“신앙선조들의 삶과 덕을 봉사를 통해 체험하면서 하느님께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구산성지(전담 정종득 바오로 신부)는 2020년부터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신자들과 함께 「성경직해」를 읽고, 신앙 선조들의 옛 기도문을 통해 그들의 신앙 영성을 체득하는 신앙선조 영성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혜옥(가타리나·61)씨는 신앙선조 영성피정을 시작할 때부터 담당 봉사자를 맡았다. 그는 “코로나19로 신앙의 방향을 잃은 우리가 피정을 통해 선조들의 신앙 가치관을 배우며 길을 찾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12년째 매일 구산성지에서 성지 제대 관리 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구산성지에서 봉사를 하게 된 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고덕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이씨는 가족들도 차례로 입교시켰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자 온 가족이 오랜 기간 냉담에 들어갔다.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냉담에 대한 죄의식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10년 구산성지를 찾았고, 이내 냉담을 풀었다.

“구산성지에 묻힌 성 김성우(안토니오, 1795~1841)의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기를 원합니다’란 유언을 접했을 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향해 뜨겁게 나아갔던 신앙선조들의 모습과 제 자신을 비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봉사를 결심했죠.”

이씨가 봉사를 통해 신앙선조들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자 가족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봉사 시작 후 자주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족을 더 ‘배려’하게 됐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통해 익힌 ‘경청’의 자세로 가족을 대했다. 온가족모두 냉담을 풀었고, 얼마 전에는 외손녀도 세례를 받았다.

봉사자로 성지에 있을 때 가장 편하다는 이씨는 “봉사자들의 열정을 보기에, 앞으로도 봉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지에서 봉사하고자 멀리 인천과 이천 등지에서 시간을 내서 오는 분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미소를 보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더 열심히 봉사할 동기부여를 얻기 때문이라는 것.

이씨는 “코로나19는 신앙선조들의 길을 되새기며 이분들이 물려준 신앙을 호두알처럼 단단하게 굳힌 계기가 됐다”면서 “항상 겸손 안에서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신앙을 가꿔가는 봉사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처음 성지 봉사를 시작했을 때, 김성우 성인의 무덤을 보며 신앙 후손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던 순간을 아직 기억합니다.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앞으로도 여력이 닿는 한 계속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