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 교회는?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2-04-05 수정일 2022-04-05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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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도 생명에 무관심… 배우고 알아야 생명수호 할 수 있다
교회 가르침 명확히 알리고
인식과 태도 변화 이끌어야
사목자의 무관심도 큰 문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 교회 생명수호 활동과 태아 생명보호를 위한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가가 한 생명을 없앨 수도 있다고 판결한 사안으로, 생명경시풍조를 단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후속 입법 조치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태아 생명은 죽음의 문턱 앞에 놓여 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활동을 펼쳐 왔고, 앞으로는 무슨 노력을 중점적으로 기울여야 할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3년을 맞아 이를 살펴본다.

■ 태아 생명수호 위한 꾸준한 활동

‘태아 생명수호’. 전 세계 교회에 이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짙어지는 죽음의 문화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생명의 문화를 확산하는 예언자이자 생명의 수호자로서 역할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이 부여하신 주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이를 실천하기 위한 활동을 그동안 꾸준히 펼쳐 왔다. 교회는 ‘수정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가르침을 일관되게 천명했고, 법·제도·정책이 이에 반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는 그에 대한 질타도 서슴지 않았다.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을 때도 교회는 ‘인간 생명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등 사목교서와 선언문, 탄원서 등을 발표하며 이에 반발했고, 나약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사회는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지닐 수 있다며 태아 생명과 여성을 보호하는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는 지난해부터 ‘가정과 생명을 위한 미사’ 거행 날짜를 2월에서 5월, 장소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전국 교구 주교좌성당(순회)으로 변경하면서 교회 생명운동의 새 출발을 알렸다. 서울대교구는 2020년 한국교회 최초로 태아 생명을 지킨 미혼부·모들을 격려하기 위한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설립해 태아 생명수호 노력을 이어 오고 있다.

가톨릭신문사의 ‘낙태종식을 위한 기도봉헌’, 올봄 두 번째로 진행된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등 태아 생명 살리기를 위한 기도 봉헌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 죽음의 문화 갈수록 심해져

그러나 사회 안에서 생명의 문화 확산은 아직까지 요원한 상황이다. 2012년 합헌으로 결정이 난 낙태죄는 불과 6년여 만인 2019년 헌법불합치로 법적 판단이 바뀌었다. 올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일부 후보가 ‘낙태에 건강 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내놓는 등 태아 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도움을 정책으로까지 펼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3년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승리를 외치던 이들은 이제 낙태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태아 생명과 여성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도외시한 채 먹는 낙태약 ‘미프지미소’ 허가·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에는 임신 34주 태아를 낙태시켜 숨지게 한 의사가 낙태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임신 34주 태아를 제왕절개 후 낙태시켰지만, 법적 보호 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낙태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의사는 살아서 태어난 아기를 죽인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 교회 생명수호 활동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이 같은 현실에 교회 생명의 문화 전파를 위한 전환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만연한 생명경시풍조와 죽음의 문화를 이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활동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생명수호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교구 본당 생명분과 서봉흠(요셉) 대표는 “심각한 상황 속에 오히려 생명의 수호자들은 줄고 있다”고 밝혔다. 죽음의 문화 앞에 신자들의 생명의 복음 전파 활동은 더 활발해져야 하지만,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때와 비교해 본당 생명분과위원 수가 줄었고, 활동도 저조하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등 노력을 펼쳤지만, 그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실망하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는 등 생명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졌다”며 “무엇보다 신자들의 삶과 신앙이 생명 문제에 있어 크게 분리돼 있다”고 우려했다.

2019년 6월 19일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생명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주제 가톨릭포럼에서 유성현 신부(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교회는 성과 혼인, 가정 등에 대해 교회 가르침으로 분명하게 교육을 지속해서 신자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대대적인 생명윤리 교육 절실

신자들의 삶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도록 돕기 위해 교회는 대대적인 생명윤리 교육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이에 대한 입법자들의 움직임이 묘연한 상황에서는 모든 신자가 생명의 수호자로 살아감으로써 여론을 바꾸고 법·제도·정책 변화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이준연(요한 사도) 신부는 “생각이 바뀌면 말과 행동이 변화해 습관이 되고 결국 문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며 생명윤리 교육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2020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정기 학술 세미나에서 전국 16개 교구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회 생명윤리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가장 큰 이유는 ‘사목자 관심 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신부는 생명윤리 교육 활성화를 위해 ‘생명윤리 교육위원회’ 구성과 ‘생명지원센터’ 설치 등을 제언했다. 특히 이 신부는 “사제 생명윤리 교육은 매우 부족하다”며 “교회 가르침이 사제 자신은 물론 신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신자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이 분리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 사목자 관심과 신자들의 용기있는 활동 필요

교회 생명수호 활동은 지금까지의 걸음에서 나아가 사목자들의 극진한 관심과 신자들의 용기가 절실하다. 꽃동네대학교 교목처장 김승주 신부(베드로·예수의 꽃동네 형제회·프로라이프대학생회 지도)는 2020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대안적 성찰’ 주제 학술대회에서 ‘교회 내 생명교육 활성화’를 당부하면서 사목자들의 더 큰 관심을 요청했다. 당시 김 신부는 사제 양성 과정에서 실천적인 생명윤리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미국교회에서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날인 1월 22일을 ‘낙태아를 위한 특별 보속의 날’로 정해 2003년부터 전례력에 기입했다고 덧붙였다.

유성현 신부(베드로·인천 연안본당 주임)도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 역할은 더 확대되고 이는 신자들 역할이기도 하다며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교회의 과제」 연구 논문에서 유 신부는 “낙태 문제에서 교회 가르침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낙태 문제가 법·사회·윤리적으로 어떤 문제를 낳으며, 그 문제가 인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아야 한다”며 “배우고 알아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당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유 신부는 이러한 태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 역할이고, 신앙과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며 다음의 성경 구절을 강조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야고 2,14.22)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