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벼랑 끝에서 손내민 이웃 덕분에 살아갈 힘 얻었죠”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2-28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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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희망 되어준 신자 상인들의 따뜻한 나눔 이야기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빚에 허덕이며 막막한 상황
동료 상인 안타까운 소식에
발벗고 나서 경제 회생 도와
기도로 힘 보태며 서로 응원

붕어빵을 팔며 생계를 유지 중인 양해동씨와 건너편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황지안(오른쪽) 원장, 용산구 소기업소상공인회 김용호(가운데) 이사장이 붕어빵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고 있는 소상공인들.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냉랭한 상황 중에 꽃샘추위도 누그러뜨릴 만큼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사연이 전해졌다. 서울 보광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양해동(안드레아)씨와 건너편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황지안(베르다) 원장, (사)용산구 소기업소상공인회 김용호(바오로)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양씨는 6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린 시절부터 생계에 뛰어들었다. 노점상과 포장마차 운영, 시내버스 운전기사, 생활용품 판매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그러다 10여 년 전, 꽃집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은 꽃 판매에도 영향을 미쳐 여름에는 옥수수 장사, 겨울에는 붕어빵을 팔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가게 운영상 급하게 자금이 필요해 대부업체로부터 1000만 원을 대출받아야만 했다. 양씨에게는 큰돈이었지만, 아내와 두 자녀를 생각하며 차근차근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갔다. 하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많은 상인들이 폐업하거나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양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저히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안 돼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지난해에는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1500만 원에 이르렀다.

“막막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는데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점점 몸이 안 좋아져 지하 단칸방을 탈출할 날만 고대하고 있었는데….”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에게는 이웃이 있었다. 10여 년간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황지안 원장은 “1년 사계절, 하루도 빠짐없이 꽃을 내놓고 옥수수와 붕어빵을 팔고 있는 양 사장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결코 남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산구 소기업소상공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황 원장은 곧바로 김용호 이사장에게 양씨 사연을 전했다.

김 이사장은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자비로 방호복을 구입해 상인들 가게를 직접 소독하고 다녔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을 때였다. 그런 김 이사장의 선행과 추진력을 황 원장은 믿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양씨를 직접 찾아 사연을 다시 전해 들었고, 그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김 이사장은 “정말 한결같이 성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됐다”며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신용을 회복해야 했다.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부 대출도 신용불량자인 양씨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아 성당에 가만히 앉아서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김 이사장은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김 이사장은 직접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어 타협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황 원장도 연결돼 협박을 받는 등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고 양씨 사연을 솔직하게 전하며 끈질기게 설득했고, 대부업체도 마음을 움직였다. 600만 원을 일시불로 갚으면 1500만 원의 빚을 변제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체하지 않고 자비로 먼저 이를 갚았다. 재빨리 신용보증재단과 은행에도 연락해 신용을 회복했고,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신용이 회복되자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지원하는 취약계층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지하 단칸방도 탈출할 수 있게 됐다.

“꿈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내와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을 한꺼번에 보내주신 것 같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서로 감사의 이야기를 하던 중 세 명 모두 열심한 가톨릭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감격했다.

양씨는 “아직 여유는 없지만,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천사들을 보내준 것처럼 언젠가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황 원장은 “양 사장님의 성실함에 하느님도 감동하신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김 이사장은 “소상공인들은 아주 적은 돈에도 파산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된다면 서로 도우면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