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장 이임 앞둔 염수정 추기경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11-16 수정일 2021-11-17 발행일 2021-11-21 제 327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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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노력했던 시간 하느님 눈길 머무는 데서 봉사할 것
■ 과분한 은총에 감사
여러분들 기도와 지지가 큰 힘
도움 필요한 곳 찾아 봉사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 가질 것
■ 형제애로 자비 베풀어야
진정한 평화는 기도로 청해야
희망 잃은 가난한 이들 위해 조건 없이 나누고 기도하길

염수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서 봉사하는 게 저의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사진 이승훈 기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11월 30일 이임 감사미사를 마지막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다.

염 추기경은 지난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해 약 10년간 서울대교구를 이끌었다. 염 추기경은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는 사목표어에 따라 하느님 눈길이 머무르는 곳을 찾아 다채로운 사목에 헌신해 왔다. 은퇴를 앞둔 11월 11일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염 추기경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들어봤다.

■ 하느님 앞에 겸손함 고백하는 사제

“홀가분하고 상쾌해. 가을이 돼서 그런가? 허허.”

검은 사제복을 입은 염수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라는 직무를 내려놓는 소감을 이렇게 시작하며 웃어보였다. 솔직하면서도 겸손함이 묻어나오는 답변이었다. 이어 지난달 28일 봉헌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임명 감사미사 때 했던 말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 너무나 과분한 시간이었다”며 “스스로는 부족함이 많다”고 거침없이 고백했다.

“모든 게 하느님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과분한 은총을 주셔서 목자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살려고 했고 그렇게 살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주변의 선후배 신부님들, 수도자, 신자 여러분들의 기도와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염 추기경은 “어려운 이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며 “저의 게으름이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느님 눈길이 가는 곳,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제가 다 따라가지 못해 아쉽습니다. 특별히 저의 잘못과 부족으로 상처받으신 분들께 용서와 기도를 청합니다.”

교구장직을 맡았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최근에 치른 고(故)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를 주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이 하느님 곁으로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입을 뗐다.

“교구장 아니었을 때가 좋았지요.(웃음) 제가 교구장을 맡으면서 비로소 정 추기경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시니까 의지할 곳이 없어진 느낌이더라고요. 물론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이지만 말이에요.”

■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

연신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모습과 달리 실제로 염 추기경은 여러 본당 보좌와 주임을 맡으며 신자들의 세상살이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춘 사목자다. 교구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생명위원회 등을 거치며 교구 살림살이를 부지런히 돌보는 실무자로 활동했다. 특히 2005년부터 지금까지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생명 수호와 생명문화 건설을 위해 앞장서왔다.

어느 순간에나 인간 생명을 돌보는 일에 성심을 다하는 염 추기경은 올해 1월 1일부터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는 등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생명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출산율 저하도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양육비와 교육비, 주택비 등 아이를 위해 여러 희생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아이가 사랑의 결실이며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면서도 여러 제약을 두죠.”

이어 염 추기경은 “인간 생명이 무엇보다 존엄하고 숭고한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라며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엄한지 깊이 받아들이고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아가 “우리부터 주변의 힘없고 가난한 이들, 기댈 곳 없는 이민자들,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 일자리가 없어 희망마저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염수정 추기경이 2014년 3월 추기경 서임 감사미사에 참례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진 서울 후암동 쪽방촌 주민들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는 염 추기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형제애 바탕으로 기도와 연대

염 추기경은 그동안 서울대교구장과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녘교회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도 사목적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염 추기경은 신자들에게 “진정한 평화는 우리의 기도로서 청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며 “기도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돼야 합니다. 일상에서 평화를 살아내고 이뤄내는 게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인간의 노력과 실천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끝없는 용서와 조건 없는 나눔을 지닌 자비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하죠.”

더불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세계주교시노드를 언급하며 “한국교회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라며 “서로 아끼고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그 가운데 성령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교구의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교구 단계 시노드에 마음과 힘과 정신을 다해 참여해 달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 일정에 대해 염 추기경은 “하느님 눈길이 머무는 곳에서 봉사할 것”이라며 “그게 제 행복”이라고 밝혔다.

“요즘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100세 시대잖아요?(웃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도할 겁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 봉사하고 싶고요.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제대로 찾아뵙지 못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도 잘 모시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어떤 추기경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염 추기경은 “그냥 잊어줬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대답하고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그동안 미처 배려하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편안한 미소를 띠며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하느님 뜻에 따라 열심히 노력했어요. 부족하지만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해주세요.”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