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은주연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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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대면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 보니 아무래도 조촐한 미사를 드리게 되는데, 띄엄띄엄 헐렁하게 앉아있는 신자들 사이에서 그 간격을 꽉 메우고 있는 신심을 느낄 때가 있다. 성글게 모여 앉은 신자들 틈에 있으니 그분들의 간절함과 나의 간절함이 미사의 공기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조용함 가운데 드리는 미사에서 나는 예전의 간절함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간절함에 대한 기억이 있다. 십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은 친정엄마의 ‘암’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에 황망할 겨를도 없이 친정엄마는 이틀 후에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고, 멀리 대구에 있던 나는 세 살짜리 딸아이와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곱씹을 새도 없이, 병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새도 없이, 엄마는 새벽에 수술실로 들어갔고, 내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길게 느껴졌던 시간, 수술방 앞에서의 11시간이 지나갔다.

비교적 가벼운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엄마의 성당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오늘 엄마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어제 연락을 받고, 다른 분들과 함께 병원 성당으로 모이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수술이 시작되는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함께 기도할 테니 걱정 말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함께 기도할 생각으로 성당으로 내려간 나는 너무나도 놀랍고도 감사한 광경을 목격했다. 대여섯 분이 모여 차례차례 양팔을 올린 ‘양팔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교우분들 덕분에 황망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기운을 내서 묵주알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11시간 동안 교우분들은 엄마와 기도로 함께해 주셨다.

엄마는 그 후로 여러 번 이어진 항암치료와 추적 검사를 통해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엄마 수술을 집도하셨던 의사선생님께서도 ‘기적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기적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기적을 생각할 때마다 그날 병원 성당에서 보았던 양팔기도가 떠오른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예레 46,28)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우리 옆에 계시는 모든 순간이 감사이고 기적임을 늘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