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정의 달 기획 TV 속 가상 가족 상담 (상) 부부 갈등

정리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7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다정한 태도를 훨씬 더 자주, 더 강하게, 더 아낌없이, 더 부드럽게, 더 기쁜 마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사랑의 기쁨」 134항에서 남편과 아내가 날로 더욱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기 위한 방법을 알려 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이를 지키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날마다 노력이 필요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이서원(프란치스코) 소장과 함께 2주에 걸쳐 TV 스크린 속 가족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가정의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KBS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 화면 캡쳐

■ 상황1.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 변호(최대철)는 아내 광남(홍은희)이 하는 말마다 꼬투리를 잡는다. 부부가 오랫동안 쌓아 왔던 서운함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데….

아무리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도 자꾸 쌓이면 배가 가라앉기 마련

변호: (거실에 앉아 있는 아내와 처제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간다.)

광남: 무슨 일 있어? 재판에서 졌어? 저녁은?

변호: 뭘 물어봐~ 언제 밥 차려 줬다고~

광남: 맨날 먹고 들어오니까 안 차려 줬지~

변호: 안 차려 주니까 먹고 들어왔지~ 집에서 뭐 하는 게 있다고 밥도 안 차려 줘?

광남: 어머? 안 한 건 또 뭐 있어? 어디 가서 나 같은 마누라 얻는다고~ 예쁘지~ 날씬하지~

변호: 예쁘고 날씬한 거 필요 없고~ 밥이나 한 번 해 줘 봐!

(KBS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 중)

- 남편 말투가 평소와는 좀 달라 보입니다. 이럴 땐 대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 이서원 소장(이하 이 소장): 이 대화에는 여러 이슈가 숨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둔한 아내와 과묵한 남편이 빚어내는 에피소드’입니다.

아내는 지금 제대로 말을 안 해 주면 못 알아차릴 만큼 둔한 상태입니다. ‘우리 남편은 밥을 안 차려 줘도 괜찮은 특별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건 안이한 것입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정말 ‘한 번도’ 밥을 안 차려 줘도 아무 말 안 한다면 한 번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쩌면 관계를 회복할 많은 시간을 놓쳤을 수 있습니다.

반면 남편은 과하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릅니다. ‘내가 참고 넘어가지 뭐~ 언젠가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눈치 빠른 아내라면 알아차리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리 없어 보입니다.

실제 부부라고 생각하면 이제 막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자로는 이런 상황을 적우침주(積羽沈舟·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음)라고 합니다. 지금껏 남편이 마음속에 깃털을 하나하나 쌓아 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쿨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순식간에 침몰하게 됩니다. “갑자기 왜 그래?” 하면 늦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아내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예쁘고 날씬하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고 남편은 서운함에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 둔한 아내와 입이 과하게 무거운 남편. 이 부부가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 이 소장: 물론입니다. 한 마디면 됩니다. 남편이 “뭘 물어봐~ 언제 밥 차려 줬다고~”라고 얘기할 때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네”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속으로 ‘갑자기 왜 나한테 지X이야’(웃음)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만약 한 발 물러나기 힘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습니다. 좀 더 성숙한 아내라면 우리 남편이 쌓인 게 많다는 걸 알아차리고 “당신 그동안 많이 쌓였구나~”하고 이해해 주면 훨씬 좋습니다.

원래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만 활성화 돼 평소 하던 말과 다른 행동을 합니다. 상대가 평소와 달리 시비를 걸거나 얌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센 말을 한다면 굉장한 스트레스 상황임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이 남편이 바로 그 상태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관계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 부부의 경우, 아내는 남편에 대한 ‘레이더’를 키우고 남편은 ‘스피커’를 키워 아내에게 서운함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필요합니다.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화면 캡쳐

■ 상황2. 남편 유신(이태곤)은 새 어머니와 함께 춘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아내 피영(박주미)과 대화를 잘 하나 싶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상대방 흠 잡는 공격적 대화보다 ‘호기심 화법’으로 다가가 보세요

피영: 춘천까지 갔으면 맛있는 거 좀 먹지! 막국수랑 닭갈비~

유신: 김 여사 입맛이 아직 안 돌아와서~

피영: 이제 호칭 제대로 해요~ 자녀 교육상 안 좋아~ 듣기도 별로고.

유신: 당사자는 뭐라 안 하는데 왜?

피영: 원래 잔소리 안 하는 양반이잖아~

유신: 그 점 본받아!

피영: …….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중)

- 마지막 일침을 가하고 흐뭇한 표정인 남편과 달리 아내는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요. 뭐가 문제인가요?

▲ 이 소장: 한 마디로 “똑같으니까 만났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대화 패턴을 보면 둘이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둘 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좋게 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서로 인정받는 느낌을 못 받습니다.

모든 행동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퍼즐을 다 맞추고 나면 빠진 조각을 바라보게 되는데, 거기에만 집중하며 지극히 본능적인 대화를 하면 서로의 흠을 잡으며 공격적인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폭력적 대화입니다.

대화는 처음에 말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 대화에서는 아내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상황입니다. 본인의 뜻을 하나도 못 이뤘죠. 이런 대화가 지속되면 이 부부는 앞으로 사이좋게 못 지낼 거라는 게 그대로 보입니다. 특히 남편이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어지간히 조심하지 않으면 바꾸기 힘듭니다.

사람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만 나무랄 때 상대를 공격하고 싶어 합니다. 남편은 자기가 새 어머니를 ‘김여사’라고 부르는 의도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의도를 궁금해 하지 않고 자기 기준에 안맞는다고 나무랐습니다. 이럴 경우 상대는 억울합니다. ‘사연도 모르면서 나를 치네’라고 생각하게 되고 복수하고 싶어집니다. 마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들춰내는 검사와 그 반대편에 선 변호사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요?

▲ 이 소장: 일단 어떤 것을 해결하고 싶다면 ‘호기심 많은 화법’을 기억해야 합니다.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아내가 먼저 “여보~ 당신이 어머니한테 김 여사~ 김 여사~ 하니까 나는 되게 신기해”라고 말했으면 남편이 “왜 신기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럼 “보통 잘 그렇게 안 부르는데 궁금해서~”라고 답하면 남편은 분명 “그런가? 내가 좀 이상한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김 여사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겠지요. 그럼 “아~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 난 또~”라고 공감해 주면 보통 상대방도 관심을 보이며 “왜 그러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 때 “다르게 불렀으면 해서~”라고 넌지시 말하면 남편이 바뀔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옷 색깔이 그게 뭐냐”고 다짜고짜 지적한다면 “소장님은 어지간히 맞으신가 봐요~”라는 공격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서원(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이자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으로 부부 및 부모, 자녀 등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가족갈등 해법을 감정 관리로 풀어 가는 CPBC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감정식당 TO YOU’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상처 입은 다양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나를 살리는 말들」과 감정을 요리하는 법을 담아낸 「감정식당」 등을 펴냈다.

정리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