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기도를

[위령기도를]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2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서울대교구 김병도(프란치스코) 몬시뇰이 3월 24일 오후 4시9분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26일 오전 10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봉헌됐다. 장지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

1935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김 몬시뇰은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서품 동기로 올해 사제수품 60주년(회경축)을 맞았다.

서품 직후 6년 간 해군 군종신부를 거친 김 몬시뇰은 이듬해 미국 듀케인대학교에서 교육행정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15년간 당시 서울대교구장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보필하며 교구 비서실장 겸 홍보담당을 지냈다. 이후 가톨릭출판사 사장을 거쳐 교구 사무처장, 서울 대방동·주교좌명동·가락동·구의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87년 교구 사무처장 겸 주교좌명동본당 주임 당시 6·10 민주항쟁의 보루가 된 명동대성당을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몬시뇰은 사제수품 40주년을 기념해 펴낸 회고록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가톨릭출판사, 2001)에서 1970년대 군부정권 시대를 겪으며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등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몬시뇰에 서임됐으며, 의정부교구 신설 전까지 경기도 지역 교구장 대리를 지냈다. 이후 2010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 몬시뇰은 자신의 세례명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청빈한 삶을 하느님께 약속하고 가난과 겸손의 영성을 몸소 실천해 왔다. 실제 그 약속대로 물적 예물이 생기면 모두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해 내놓았다. 또 1991년 ‘글라라의 집’(경기도 광명시)을 시작으로 ‘프란치스코의 집’(경기도 광주시), ‘모니카의 집’(서울 구의동), ‘자애로운 성모의 집’(서울 쌍문동) 등 네 곳의 무의탁 노인공동체를 설립했다.

고인의 장례미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참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시며 사제들에게 모범이셨다”며 “덕망이 높으면서도 겸손했고 실제로 빈민사목, 노인사목 등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에 힘쓰셨다”고 말했다.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김병도 몬시뇰 장례미사 중 손희송 주교가 고별예식을 집전하고 있다. 사진 박지순 기자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