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미얀마 민중항쟁, 한국교회는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3-23 수정일 2021-03-24 발행일 2021-03-28 제 323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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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오월<5·18 광주민주화운동>’ 기억하며 미얀마 아픔에 형제애로 연대
한국 주교단, 성명 발표하고 
미얀마 고통에 함께할 뜻 밝혀
5·18 경험에 의한 연대의식
십자가 신앙으로 승화시키며
미얀마 도울 구체적 방법 모색

3월 22일 광주 염주동성당에서 봉헌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철회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미사에 함께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연대를 표명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미얀마 각지에서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펼쳐졌다. 시민들은 비폭력 시위와 시민불복종 운동을 펼쳤지만, 군부는 실탄을 발포했다. 미얀마 현지 단체에 따르면 이미 200명 이상이 군부의 폭력으로 살해당했고, 2000명 이상이 강제 투옥됐다. 그러나 군부의 폭력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미얀마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연대할 수 있을까.

■ 미얀마, 그리고 광주

“우리는 41년 지난 오늘도 총과 칼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간절히 외치며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오늘 미얀마 국민들을 통해 다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이들과 연대하고 힘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3월 22일 광주 염주동성당에서 봉헌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철회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미사 중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금 이 시간 미얀마가 겪는 아픔에서 1980년 5월 광주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겪은 아픔을 떠올렸다.

김 대주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렀기에 우리는 지금 미얀마 국민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주교단 역시 3월 11일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발표한 ‘미얀마 사태를 접하는 한국천주교 주교단 성명서’를 통해 “한국도 미얀마처럼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며 “한국천주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이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미얀마 형제자매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형제애로 연대한다”고 표명했다.

우리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통해 갖는 연대의식은 미얀마 역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주교회의(CBCM)는 현재 미얀마에서 자행되고 있는 군부의 억압과 폭력에 관해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에게 서한을 보내며 연대와 협력을 부탁했다. 미얀마 주교회의는 교황청에 연대를 요청하면서, 특별히 광주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광주대교구장인 김 대주교에게 이 서한을 보낸 것이다.

■ 시민은 저항, 종교는 침묵

광주의 경우 종교, 특히 가톨릭교회는 군부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시민들의 신음에 찬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고(故) 정형달 신부를 비롯한 광주대교구 사제단은 1980년 6월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작성, 계엄군 학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전국 교구에 인편으로 발송해 광주의 참상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렸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3월 17일 우리신학연구소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웨 노에 흐닌 쏘(한국이름 ‘강선우’)씨는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혹한 유혈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미얀마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저항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이 크다”고 말했다.

불교 신자가 88%에 달하고, 스님의 수만도 40만 명에 달하는 미얀마는 불교 종교지도자의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침묵했고, 미얀마 승려연합회도 3월 8일이 돼서야 소극적으로 애매모호한 발표에 그쳤다.

가톨릭교회의 경우도 미얀마 주교회의가 시위 참여를 금지하는 공지를 내 빈축을 사고 있다. 미얀마 주교회의 주관으로 매일 오후 8시 모든 신자들이 함께 미얀마의 평화를 기원하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교회 지도자들이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주교 중 시민운동에 참여한 이는 만달레이대교구장 마르쿠 틴 윈 대주교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매체들도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폭력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 평신도 선교교육원 마웅 존 원장은 “주교회의는 공식적으로 시위 참여를 막았지만, 수녀님들이 앞장서 시위대를 보호하고, 평신도들도 십자가를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며 “평신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군부를 두려워하고 있음에 불만을 지니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3월 15일 서울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미얀마 민주주의 기원미사 중 신자들이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규탄하고, 미얀마에 평화를 기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우리가 함께합니다

미얀마에서 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한국 땅에서 당장 이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이에 한국교회 주교단을 비롯한 국내 여러 기관·단체들은 미얀마 군부의 행태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주교 전체가 미얀마 사태에 대해 뜻을 모아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 교회 내 다양한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상지종 신부는 “주교단이 정기총회를 통해 이 사안을 논의하고 성명서를 낸 것은 한국교회 안에 끼칠 영향력이 적지 않고, 이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공유하고 확산시켜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타 종단,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함께 3월 18일 ‘미얀마 민중 항쟁은 반드시 승리합니다’라는 7대 종단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와 민주화 지지 광주연대’를 발족해 시위와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한국의 연대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가고 있다. 1980년 시민들의 힘으로 군부의 독재를 이겨 내고 민주화를 일궈 낸 장본인이자, 같은 아시아의 일원인 한국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한국이 지지한다는 것 자체에서 미얀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미얀마 현지 인권단체 ‘셰어 머시’(Share Mercy)에서 활동하는 와얀 틴 마웅 윈 사무총장은 “한국은 아시아인으로서 가장 큰 지지를 보여 주고 있다”며 “한국의 종교와 국가, 시민단체 등 다방면에서 오는 지지와 응원은 저희에게 너무도 큰 힘이고, 덕분에 우리가 아시아에서 버려지지 않았다는 연대감을 갖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광주미얀마네트워크의 묘네자씨도 “한국 종교계가 미얀마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쿠데타가 끝나더라도 기도와 연대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광주대교구 사회사목국장 김민석 신부는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로 함께 연대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연대활동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기도했으니 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3월 14일 미얀마 양곤 거리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CNS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