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떠난다」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09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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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오 신부 지음/296쪽/1만5000원/파랑새미디어
아일랜드 대자연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현존
한국외방선교회 양재오 신부
‘홀리 힐 은둔소’에 두 달 머물며 
직접 보고 느낀 창조주의 위대함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전해
소설 「노르웨이의 숲」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이 나를 키웠다”고 할 정도로 유달리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행은 인간과 자연에 내재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떠난다」는 하루키를 떠올리게 하는 섬세한 언어와 풍부한 감성으로 만날 수 있는 여행 기록이자 여행 속에서 걸러낸 묵상의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저자가 한국외방선교회 선교 사제로 타이완에서 26년째 사목하고 있는 양재오 신부라는 점이 하루키에 더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떠난다」는 저자가 이름마저 생소한 아일랜드 북서쪽 슬라이고(Sligo) 옥스 마운틴 아래 자리한 ‘홀리 힐 은둔소’(영성생활회 공동체)로 떠나 2014년 4월부터 두 달간 머문 체험을 담고 있다.

양재오 신부가 직접 찍은 사진도 책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

하루하루 일기 형식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저자에게 ‘하느님 현존의 표지, 곧 성사의 의미’로 다가왔던 경험(사건)과 기억을 통해 삶의 위로와 힘을 얻었던 생생한 체험담이다. 하루키처럼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소해 보이는 일상’을 자신만의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저자의 감성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홀리 힐에 있는 열네 채의 은둔소 가운데 하나인 ‘성 아녜스의 집’에 머문 시간은 저자가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창조주의 위대함을 찬미하며 보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저마다 독립된 자신의 은둔소에 머물며 침묵과 벗하고 고독(solitude)한 가운데 하느님과 대면하는 생활’은 ‘빛나는 소박함’이라는 삶의 정수에 가닿게 해 준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는 ‘하느님이 빚어낸 대자연 안에서 그분의 자취를 발견하고, 그분의 현존을 체득할 줄 아는 감수성’ 곧 ‘신앙감각’(sensus fidei)을 느끼는 기쁨이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

저자가 직접 찍은 27장의 사진도 곁들여 한층 가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