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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서울 북촌마을 보름우물

한문석(요셉·의정부교구 중산본당)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2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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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들이 잘 보존된 북촌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두 궁궐 사이, 도성 중심에 위치해 있다. 양반과 궁궐 관리들이 많이 살았던 북촌마을엔 그들이 살았던 한옥이 일부나마 잘 보전되어 있다.

멋있고 품위 있게 살았던 선조들은 뛰어난 문화를 창조했다. 고풍스럽고 은은한 자연미가 흐르는 한옥 정취를 느끼면서 아기자기한 좁은 골목길을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북촌마을은 천주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1779년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 젊은 학자들이 모여서 강학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리학, 윤리학, 철학 명제에 관한 토론과 기존의 다양한 학설들을 깊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교리를 연구함으로써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을 알게 됐다. 천진암 강학회에서 젊은 학자 이승훈을 중국 베이징으로 보내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왔다. 이후 명례방(명동성당) 김범우 집에서 발족한 신앙공동체가 한국교회 시작이 된 것이다.

그 후 사제 없이 6년 동안 신앙공동체를 이어가던 중, 1791년 12월 24일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가 한양성 북촌마을 최인길 집에서 조선교회 첫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그날은 조선교회 역사적 날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한 첫걸음이 됐지만 천주교 박해의 도화선이 됐다. 북산사건·진산사건, 바로 신유박해가 발발하게 된다.

100년 동안 조선교회에 대박해가 이어지게 된다.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다는 신앙으로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고 멀고도 험한 교우촌에 들어가 미사를 드린 신앙 선조들의 순교는 한국교회 희망이자 씨앗이 됐다. 신앙의 위대함을 찬미한 선조들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아름답다.

북촌마을에는 유명한 우물이 여러 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없어지고 석정골 북정 ‘보름우물’만 보존돼 있다. 보름우물은 우물물이 15일은 맑고 15일은 흐려져 보름우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문모 신부가 이 우물물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며, 김대건 신부도 북촌마을에서 도피생활을 하면서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마을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다.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이 물을 마셔야 하며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우물이다. 우물은 땅을 깊이 파서 샘물이 솟아나와 물이 고여있는 곳이다. 이것을 우물이라고 한다. 물은 두레박으로 퍼올려서 맑은 윗물을 사용한다.

우물가는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만나는 장소이고, 길가던 사람들이 목이 말라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지친 몸을 쉬기도 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해듣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 우물가에서는 남녀가 서로를 새로이 알게 되고 남녀 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남녀 간의 혼인성사를 위해 정담을 나누는 장소가 되는 등 만남과 이별의 정겨운 공간이다. 모세와 치포라, 이삭과 레베카, 야곱과 라헬도 모두 우물가에서 만났다.

예수는 사마리아 한 고을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친 예수는 그 우물가에 그대로 앉았다. 때는 정오 무렵. 마침 사마리아 여인 하나가 물을 길러 왔다. 그러자 예수가 마실 물을 청했고 여인은 “선생은 어떻게 미천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예수는 그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6-14) 라고 말했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은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마리아 여인 안에서 생명의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한 장소가 바로 우물가였던 것이다.

저녁해가 서서히 넘어가는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 왔다.

한문석(요셉·의정부교구 중산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