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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별을 찾아라] 3. 이주민 사제가 말하는 ‘이주민’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0-12-08 수정일 2020-12-08 발행일 2020-12-13 제 322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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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더 심해졌지만… 미사 안에서 주님 오실 희망 느껴
의료·급여 등에 차별 받고 부족한 방역 정보에 공포
거주지에 확진자 생기면 경계 대상 되고 실직하기도
이주민에게 ‘미사’ 큰 의미
하느님 안에서 신앙 찾고 동향인들 서로 위로 건네
많은 문화들 일치되는 장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가장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을 꼽으라면 이주민이 대표적이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코로나19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각 교구 이주사목위원회는 현 상황을 직면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같은 이주민으로서 이주민들을 위해 투신하는 사제들이 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이광휘 신부) 부위원장 원고삼 신부(Nguyen Cao Sam·베트남·말씀의선교수도회)와 닐로 신부(Nilo Pacuribo·필리핀·필리핀외방선교회), 민뚜 신부(Mintu·인도네시아·말씀의선교수도회), 하오 신부(Nguyen Van Hao·베트남·말씀의선교수도회)도 이주민들의 아픔과 힘겨움을 나누고 있다.

가장 힘든 상황에서 빛이 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이주민들의 상황

“하느님 뜻이죠. 수도회에 순명했습니다. 한국교회와 이주민들을 생각하며 왔습니다.”

이들은 낯선 한국 땅을 밟기까지 망설임은 없었다. 하느님 뜻에 따라 수도회에 순명하며 하늘 길을 건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주민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월급, 의료, 비자 문제 등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곳곳에서 차별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마주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이들에게 큰 위기가 찾아 왔다.

코로나19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다는 말은 이주민들에게 딱 맞아 떨어졌다.

하오 신부는 “방송 매체에서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리고 휴대전화에 수시로 긴급 문자가 오는 것도 이주민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매우 중요한 소식이지만 이주민에게는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고 있을 무렵, 감염병 자체나 방역 등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던 이주민들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귀국 준비 없이 급하게 자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정보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이미 차별은 시작된 셈이다.

실질적으로 의료 문제, 급여 문제, 생계와 거주 환경 등 코로나19 이후 이주민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차별적 요소들이 더 부각됐다.

차별은 혐오로 번졌다. 원 신부는 “이태원에서 외국인 확진자가 나왔을 때, 관계없는 이주민들도 경계 대상이 됐고 직업까지 잃은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는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도 적용됐다. 원 신부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이주민들도 한 공간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외국인들이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들도 있고 영어미사도 많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베트남 출신 하오 신부(오른쪽)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주민들에게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있다. 원고삼 신부 제공

■ ‘다문화’가 아닌 ‘상호문화’로

민뚜 신부는 “현재 안산에서 3년째 거주하고 있는데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며 “외국인 인구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요소들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는 모두를 지치게 하지만, 특히 이주민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인권적 차원에서 한국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원 신부는 “다문화가정이라고 할 때 ‘다문화’(multi cultural)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집중된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면서 “언어에서부터 차별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전체 인구의 4%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상호문화’(inter cultural) 개념에서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민뚜 신부(뒷줄 가운데)가 이주민들과 미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뚜 신부 제공

■ 미사 안에서 일치와 희망

이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실질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담과 병자 방문, 병원 동반 등 필요한 일이 있으면 두 손 걷어붙여 돕고 있다. 하지만 많은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라고 입을 모았다.

원 신부는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드리는 미사의 의미는 남다르다”며 “하느님을 만나는 의미도 있지만,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사회적, 심리적 차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동티모르 공동체도 담당하고 있는 민뚜 신부는 “춘천교구에서 봉헌되는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에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으로 3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들의 충실한 믿음이 오히려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한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참례하는 신자 수는 줄었지만 한 자리에서 만나는 자체로 행복하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밝혔다.

닐로 신부는 “필리핀에는 섬이 7000개가 있어 여러 언어와 문화가 존재한다”며 “미사 안에서는 이렇게 많은 문화들이 하나로 일치될 수 있고, 그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열리는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지만, 미사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계속해서 전해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뚜 신부가 다리가 불편한 이주민을 방문해 안수하고 있다.

■ 이방인, 이주민의 빛

원고삼, 민뚜, 닐로, 하오 신부. 이들도 한국에서는 이방인이다. 로만 칼라를 빼면 다른 이주민들과 같이 차별적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 온 목적은 ‘사람과 교회’다.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고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타지에서 동향인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큰 버팀목이 된다. 이들은 치열하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 같은 존재다.

어두울수록 별이 더 빛나는 것처럼, 오늘날과 같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존재가 이주민들에게는 큰 빛이 된다.

인권의 소중함을 외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 사제들은 이주민과 한국사회에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모은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그 삶이 국적을 초월하는 연대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할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