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자선 주일 기획] 코로나19, 기부가 희망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12-08 수정일 2020-12-08 발행일 2020-12-13 제 322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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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이제는 삶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할 때
후원으로 충당하는 관리비 코로나19로 후원자 수 급감 봉사자 발길 끊겨 운영 어려워
후원자들과 다각적 소통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나눔의 공감대 형성이 관건
나눔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소규모 시설은 더욱 고달파 지속적 기부와 후원 이어져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적지 않은 복지기관과 시설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기화된 팬데믹 상황으로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기부와 후원도 줄고 있다. 재난과 재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결정적인 고통을 안겨 준다. 한 해 동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뜻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복지시설들, 특히 규모가 비교적 작은 시설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자선 주일을 맞아 그 실태를 알아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극심한 고통이 되고 있는 이 절박한 상황을 어떻게 함께 이겨 나가야 할 지 생각해 본다.

■ 돌봄 필요한 아동은 늘었지만 월세도 못 낼 지경

긴급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 ‘우리들의 공부방’(센터장 박문예)은 월세를 못내 쫓겨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후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역 아동 센터인 공부방은 정부 보조가 있지만 월세와 관리비, 프로그램 진행비 등은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 한 달 동안에만 150만 원이 줄기도 했다. 처음에 30만 원이었던 월세가 올해는 110만 원까지 올랐다. 두 배로 오른 보증금은 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도움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센터를 찾는 아이들은 더 늘었다.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긴급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 대기 중인 아이들도 많다. 돌봄 시간도 늘어났다. 전에는 하교 후 공부방으로 왔지만 코로나19 이후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아침 일찍부터 돌보고 있다. 자원봉사자 출입도 제한됐다. 문을 닫으면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휴원은 꿈도 못 꾼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주로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가정, 한부모 가정,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들이다. 총 38명 중 아직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이 23명이다. 하지만 부모가 맞벌이라 아이들을 챙길 수가 없다. 한겨울에 내복에 겉옷만 걸치거나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오기도 한다.

코로나19 의료진 지원금을 모금한 서울여대 재학생·졸업생을 대표해 김나운 학생(왼쪽)이 3월 17일 (재)바보의나눔 우창원 신부에게 성금을 전달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눈물나게 힘들어요”

박문예(도로시 데이) 센터장은 올 한해를 돌아보며 “눈물 날 정도로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가장 힘든 건 월세”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두고 월세가 더 싼 곳을 찾아 이사하기도 어렵다”며 “또 다른 가정인 이곳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노숙인 재활 시설인 ‘우리집 공동체’(시설장 김승현 신부)도 코로나19 이후 악화된 재정과 봉사자 발길이 끊긴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매달 후원자가 두세 명에서 많게는 5명씩 끊기면서 운영비가 축소됐다. 후원 물품도 눈에 띄게 줄었다.

김승현 신부는 “예전에 노숙을 하다가 재활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현재 6명인데 알코올성 치매 등으로 근로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재활 운동이나 웃음치료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코로나19로 봉사자들 프로그램이 모두 중단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급격히 줄어든 기부와 후원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이 시설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다.

긴급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 아이들의 또 다른 가정인 ‘우리들의 공부방’. 현재 후원금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기부에 목마른 가난한 이웃들

코로나19로 기부와 후원은 더 필요해졌다. 중소 규모 복지시설들이 받는 충격은 씀씀이를 줄여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의 경우, 2019년 상반기에 비해 올해 연탄 기부가 59% 감소했고, 자원 봉사자가 54% 감소했다. 연탄 기부가 154만 장에서 63만 장으로 감소했고, 자원봉사자는 7796명에서 3595명으로 떨어졌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 22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다. 겨울나기가 막막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기부가 이미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줄었다. 통계청의 올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부 참여율이 10년간 꾸준히 내리막이었다. ‘지난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 비율이 2011년 36.4%, 2013년 34.6%, 2015년 29.9%, 2017년 26.7%, 2019년 25.6%로 줄었다. ‘현금 기부 비율’도 2013년 32.5%에서 2015년 27.4%, 2017년 24.3%, 2019년 24%로 떨어졌다.

이처럼 기부가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제적 여유 부족’이다. 그에 못지않게 큰 이유가 ‘모금 단체에 대한 신뢰’ 문제가 꼽힌다. 기부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에 대한 불신이 또 하나의 큰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민들의 기부 의향 자체가 높지 않다. 이 가운데 닥친 코로나19 상황은 사태를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코로나19 해외긴급구호 지원을 받은 필리핀 칼로오칸교구에서 전해온 감사 영상.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유튜브 화면 갈무리

■ 나눔이 필수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교회 사회복지 단체들은 모금액이 전반적으로 크게 줄지는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를 위한 긴급 모금에는 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이사장 유경촌 주교, 이하 본부)는 유튜브 라이브 등을 통해 후원자들과 활발히 소통해 왔다. 평소보다 더 많은 후원자들이 후원 의사를 전해 왔다.

본부도 처음 코로나19가 터졌을 때는 기존 사업들을 모두 멈춰야 했다. 하지만 곧바로 긴급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면서 지원 내역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다각적인 소통 구조를 만들었다. 또 기존 기부자들은 물론 새로운 유산 기부, 고액 기부자 등이 기부에 나섰다.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도 시작했다.

본부 홍보팀 김영삼(그레고리오) 팀장은 “코로나19로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가난에 처한 힘든 모습을 봤다”며 “이런 사람들을 돕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이어 “다들 어려운 시기였지만 어려운 시기에 더 나누려고 하는 마음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우창원 신부도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꿈꾸던 ‘나눔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의 희망이 보였다고 밝혔다. 우 신부는 “어려운 시기에도 모금액이 생각보다 많았다”며 “아직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지명도가 있는 모금 기관은 어느 정도 기부와 후원을 발굴할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소규모 시설들은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각지대가 생각보다 크다.

전체적으로 기부가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이제는 1회성 재난 구호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부와 후원, 나눔이 삶의 일부분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창원 신부 역시 이러한 희망을 품고 “특정한 이유로 기부를 하는 게 아니라 나눔이 일상이자, 생활의 일부가 돼야 한다”며 “기부가 필수가 되기 위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