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도시 신부의 시골 본당살이’ 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최형규 신부

정정호 기자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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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촌놈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기쁨 알게 됐죠”
농촌에서 살며 농촌사목 직접 경험하고자
서울대교구에서 안동교구 파견 사제로 자원
손수 농사 지으며 욕심 내려놓을 수 있게 돼
자연 안에 살며 하느님 섭리 더 깊이 깨달아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열매 맺는 삶’ 사는 중

“농사를 지으면서 욕심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최 신부는 “농촌생활을 하며 자연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울대교구는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관할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 교구다. 북한 지역인 황해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관할지역 전체가 도시인 셈이다. 이런 서울대교구 출신 사제가 농촌교구로 대표되는 안동교구에 와서 사목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시 신부의 시골 본당살이’ 모습을 사벌퇴강본당 주임 최형규 신부로부터 들었다.

최형규 신부를 만나기 위해 퇴강성당을 찾아갔다. 상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고도 한참을 더 달렸다. 한산한 도로 양옆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이미 추수가 끝나버린 논에는 잘 포장된 볏짚들만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흰색 비닐로 둥글게 포장된 것이 멀리서 보면 꼭 마시멜로처럼 보인다. 달콤한 마시멜로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달리다보니 어느새 퇴강성당에 도착했다.

■ ‘도시 촌놈’, 욕심을 내려놓다

최 신부는 2019년 1월 안동교구에 파견돼 2년째 사벌퇴강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먼저 안동교구까지 와서 사목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최 신부는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해외원조사업 현장모니터링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가난한 농촌지역이었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삶의 기쁨을 누리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어떤 모습들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 안동교구 파견이라는 기회가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직접 경험해 보자는 생각에서 자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 신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농촌사목을 경험해 보겠다고 왔지만, 농촌 사정도 잘 모르고, 농사일은 더더욱 몰랐다. 아는 것이 없는 최 신부는 이곳에서 ‘도시 촌놈’이었다. 그는 “강론을 준비하면서도 신자들 삶을 잘 모르면서 말을 하면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조급함이 앞서기도 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나마 농촌에서 사는 기쁨을 알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 가면서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최 신부는 “신자 어르신들 논에서 모내기도 해보고, 밭에서 감자도 캐보면서 조금씩 경험을 쌓았다”며 “크지는 않지만 성당 텃밭에서 직접 농사를 짓게 됐다”고 밝혔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도 하고 작은 열매들을 솎아주기도 해야 하는 법.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에 모두 그냥 두었던 최 신부. “신부님, 욕심이 너무 많아요. 이걸 다 얻으려 하면 오히려 못 얻어요~”라고 알려주던 어느 할머니 덕분에 새삼 깨달음을 얻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제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내가 가꾸지도 않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서 열매를 맺으려 했던 거였죠. 정성껏 돌보고 애정을 쏟아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난 2019년 본당에 부임한 최형규 신부가 첫영성체 예식을 진행하고 있다.

■ 함께하는 기쁨, 열매 맺는 삶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최 신부는 올해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농촌 삶에 뛰어들고자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에 들어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미사가 중단됐을 당시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미사 책과 사탕 한 봉지씩을 들고 신자들 집을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며 어르신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농촌 어르신들 중에는 혼자 사는 분들이 많아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다는 최 신부는 성당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어르신들을 만나 함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번은 산책을 하던 중 밭에서 혼자 일하고 계신 할머니를 보고 다가가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혼자서는 며칠이 걸렸을 일이기에 최 신부는 다른 일정을 미루고 한나절 동안 밭일을 도왔다. 다음 날 할머니는 장에 가서 치킨 한 마리를 사오셨다고.

최 신부는 “들에서 일하실 때 도와드리면서 그분들이 살아오며 겪은 아픔들을 들을 수 있었다”며 “함께 땀 흘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여름엔 텃밭에 직접 심은 수박을 본당 학생들과 함께 나눠먹었다. 이번엔 욕심내지 않고 정성껏 가꾸며 거름도 주고 길러냈다.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고. 최 신부는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이 많지는 않아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생활을 하며 자연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는 최 신부는 “계절이 바뀌며 일 년이 지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그 열매로 한겨울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9년 2월 수녀들과 함께 가정방문에 나선 최형규 신부. 사벌퇴강본당 제공

도시에서 늘 바쁘게 움직였던 최 신부는 “이곳에서 새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동안 복잡하게 지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회복하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반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예전에는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신자분이 찾아오면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황급히 머리도 다듬고 옷도 정리하고 나서야 문을 열어줬죠. 지금은 그냥 제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려요. 머리가 흐트러져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편안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하.”

더 이상 ‘도시 촌놈’이 아닌 푸근한 시골본당 신부이자 농부 모습으로 오늘도 최 신부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정호 기자 piu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