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976~987항 하늘 나라 열쇠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 교회 통해 이뤄지는 죄의 용서 세례와 고해로 죄 용서받지만 죄로 편향된 나약함 남아있어 끊임없이 사욕의 충동과 싸워야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점점 큰 죄를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점점 덜 짓게 되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작은 죄책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성 26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자신의 살인을 ‘이혼한 아내에게서 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돌립니다. 만약 살해하기 전에 이혼한 아내를 용서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연쇄 살인범 정남규는 “나처럼 그런 폭력의 피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처럼 됐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을 바로 용서했다면 어땠을까요? 신창원은 선생님에게 폭언을 듣고 자신 안에 “악마가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사정이야 어쨌건 자신도 죄를 짓는 처지에서 사람의 잘못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작은 죄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점점 큰 죄로 나아갑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때 바로 하느님 자비를 믿고 용서를 청했다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까지 죄책감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나무 뒤로 숨거나 혹은 자신들의 죄를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죄는 죄책감 낳고, 그 죄책감은 더 큰 죄를 낳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죄를 없애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위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보속을 다 해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와서 죄 사함을 받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선다면 얼마나 떨릴까요? 그래서 교회라는 것을 세우시어 그리스도의 공로와 죄 사함의 권한을 맡기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도 같은 죄인들인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