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지학순 주교<초대 원주교구장, 1921~1993>, 46년 만에 재심 ‘무죄’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0-10-05 수정일 2020-10-06 발행일 2020-10-11 제 3214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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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
내란 선동은 유죄 판단 유지
변호인과 유가족, 상소 제기

초대 원주교구장 고(故) 지학순 주교(1921~1993)가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4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해 4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형사부(나)는 9월 17일 지학순 주교 재심(2020재고합6) 공판에서 “지학순 주교가 김지하 시인과 접촉한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지 주교가 김 시인에게 활동자금을 건네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에 따라 죄로 인정한다”며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내란 선동 혐의와 관련된 다른 재심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을 고려한다면 지 주교 재심 사건에서 내란 선동 혐의가 그대로 유죄로 판단된 것은 재판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9월 23일 지 주교 재심 유죄 판단 부분에 대해 변호인들이 유가족들과 상의해 상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지학순 주교는 과거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 시대의 양심으로 불렸다. 1973년 11월 서울 YMCA에서 반독재, 부정부패 규탄 지식인 선언에 서명하고 참여해 정권으로부터 감시를 받던 중 1974년 7월 6일 해외에서 귀국하던 김포공항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주교회의는 7월 10일 지학순 주교 연행에 항의하는 발표문 ‘정의의 실천은 주교들의 의무’를 내고 지 주교 지지를 선언했다. 정부는 이튿날 지 주교를 석방했다.

그러나 지 주교는 정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정의와 인권을 향한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1974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성모병원(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마당에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사제, 수도자들,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신헌법은 진리에 반대되고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지 주교는 이 양심선언을 발표한 당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재판(74비보군형공 제21,50호)을 받고 그해 8월 9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 선고가 나오자 한국교회 곳곳에서 양심선언과 유신철폐 요구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마침내 1975년 2월 17일 지 주교는 서울구치소를 나왔다.

사단법인 ‘저스피스’(Juspeace, 구 지학순정의평화기금) 이사 최기식 신부(원주교구 원로사목자)는 이번 재심 판결에 대해 “1974년 당시 지학순 주교님 사건은 원천적으로 무효이고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사건 전체를 무효로 다시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평가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