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66. 보호자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입력일 2020-04-13 수정일 2020-04-14 발행일 2020-04-19 제 319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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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변화시키는 힘’으로서의 성령 표징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6~697항
성령의 상징인 ‘구름’과 ‘불’
하느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
사랑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듯
성령은 복음 선포하도록 이끌어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렸고 실명까지 하게 됩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했고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결국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됩니다. 모두가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 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로라는 앤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날마다 과자를 주고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한동안 앤은 로라의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둔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합니다. 앤은 끈질긴 로라의 희생 덕분으로 다시 정신이 돌아왔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파킨스 시각 장애 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던 중 로라가 사망합니다. 앤은 그 상실감도 잘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합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합니다. 어느 날 앤은 한 신문기사를 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누구도 그런 아이는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앤은 자원하였습니다. 이런 순간에 가만히 있다면 자신에게 사랑을 보여준 로라를 볼 면목이 없을 것이었습니다. 앤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헬렌 켈러를 훌륭하게 교육하여 새로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앤 설리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에게 물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선생님이 나를 꼭 안아주신 거요.”

사랑은 받아야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진 것만을 줄 수 있는데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은 받았으면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설리번이 로라의 사랑으로 새로 태어났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랑이 또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그 안엔 성령의 불이 타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하셨습니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1255~1318)의 ‘성령강림’. 불의 모습으로 내려지는 성령의 힘을 받으면 누구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에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물’이 상징하는 성령의 모습이 “(세례를 통한)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상징하고(696), ‘기름 부음’이 성령을 통한 “견진의 성사적 표징”(694)이라면,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시키는 힘”(696)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라고 하셨을 때 그 불이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성령은 특별히 성령강림 때 교회에 내리셨습니다.(696 참조) 이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불을 안 가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로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끊임없이 그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이 ‘구름’과 ‘불’(빛)은 성령의 상징입니다.(697) 특별히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하며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로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파라클리토’(Paracletos)라고 합니다. “보호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위로 내린 구름이 움직이면 자신들도 그 구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민수 10,11-13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마치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과 같게 된다고 하십니다.(요한 3,5-8 참조) 이런 의미로 영을 히브리말로 ‘숨결, 바람’과 같은 뜻의 ‘루아’(Ruah)로 씁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은 필리포스에게 에티오피아 고관에게 가서 선교하도록 이끄셨다가 또 “잡아채듯”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사도 8,26-40 참조) 성령은 이처럼 다른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도록 하느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불이 내리면 그 힘 때문에 누구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에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