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랑의 대화] 71

김재만·교육학 박사·대구교대 교수
입력일 2020-03-16 수정일 2020-03-16 발행일 1977-12-04 제 1083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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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 계발에 의한 지혜란 뜻으로 사용
지혜 : 생득적인 능력으로서의 지식
지성 : 지혜와지식의 양성을 가진 특성
결국 대상에 대한 지식은 그 대상에 대한 가치 감정의 기준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지식 지혜 지성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지식은 계발에 의한 지혜란 뜻에서 그리고 지혜는 어느 정도 생독적인 능력으로서의 지식을 말하고 지성이란 그러한 지혜와 지식의 양성을 가진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어디까지가 지혜고 어디까지가 지식이라고 확연하게 선을 그어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나는 지식의 사랑과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히 해주어야 할 것은 지성이 사랑의 요건이란 사실 그 지성은 반드시 진리에 입각한다는 주장을 해두고 싶은 것입니다.

지식이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지식일 때 그것은 사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식은 진리라고 하지요. 진리(眞理)는 참된 이치를 말하는 것이며 그 이치는 사물이나 인간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지식이 잘못하면 악용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악용되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되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지식은 참된 이치에 도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아닌 것이며 인간을 배반하는 진리 같은 것 애당초 우리가 바라지도 아니했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을 배반하는 가짜 진리가 득실거리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 가짜에 속아 넘어가기가 쉽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세상에는 참된 진리 인간을 위한 진리가 고갈된 것은 아닙니다. 고갈되지 않는 진리의 샘을 빨리 파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진리의 샘은 파면 팔수록 생명의 진리가 자꾸 솟아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식은 진리에 입각한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을 속이는 교활한 지혜로 있습니다. 그런 지혜는 결코 사랑을 낳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지혜가 사람을 표방한다면 거짓입니다. 결국은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나의 제물로만 만들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나 지식은 스스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고 탐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추구하고 탐구하는 일이 인간에 먼저 있고 다음에 진리와 지식이 있습니다.

결본부터 말하면 진리나 지식은 그에 대한 탐구과정 여하에 따라서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라고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어떤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미리 정해 놓고 그것에 도달하는 데만 전력하여 탐구 과정 그 자체를 돌보지 않는다고 하면 결과는 대단히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냐 아니냐 또는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진리를 어떻게 얻었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이 중요함은「살아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의도적으로 배우는 곳이고 가정이나 사회는 무의도적으로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마쳤을 때 최종적으로 내려지는 결론은「어떻게」살았다는 그 과정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이 탐구의 과정인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 그 탐구의 성과인 바의 행동인 것입니다.

인간을 지적 동물이라고 할 때 인간에게 영혼과 정신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은 그 정신 능력을 과시할 기회로써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적 호기심을 흥미라고도 하고 본능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헤르바르트 (Herbart) 같은 학자는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흥미가 여섯 가지 있는데 그 중에는 추구적 흥미가 바로 지식욕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 지식욕이 인간적 관심사 가운데 중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김재만·교육학 박사·대구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