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사제단상] 지금은 덤으로 사는삶 / 이상각 신부

이상각 신부 ㆍ 수원 지동 보좌
입력일 2020-01-02 수정일 2020-01-02 발행일 1987-11-15 제 158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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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 가르쳐줘
현세에 대한 애착끊고 성실한 삶 살 것 결심
익사 직전 살려주신 하느님
얼마전 미리내 성지에 있는 교구 성직자묘지를 다녀왔다. 발밑에 서걱서걱 부서지는 갈참나뭇잎의 소리와 바람만이 머물다 갈뿐 고요만이 감돌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만나면 환히 웃어주시며 손을 잡아주시던 신부님이시었는데 지금은 웃음도 말씀도 없이 누워계신다.

묘지를 돌아보며 빈 구석진자리 한곳에 나는 시선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저자리 어디엔가 내가 누워있어야 할텐데, 그때 왜 나를 살려주셨지? 아니면 보속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설려주신걸까? 하고 나 자신에 물음을 던진적이 있다.

하긴 그 일이 있고난 후부터 내게는 가끔씩 그때를 생각해보며『왜, 나를 살려 주셨을까』하고 되묻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마다 지금 나는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이란 지난 봄날 덕유산 무주구천동 계곡에서 있었던 일로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그날 나는 성모회 회원들과 함께 무주천동 계곡을 찾았다. 무주구천동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치 좋은 장소를 택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 장소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붉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경고 :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서는 수영을 금합니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익사했음.

나와 일행은 아카시아 꽃피는 5월에 수영할 일은 없다고 생각되어 그 경고를 소홀히 했다. 그런데 그 경고를 무시한 일은 잘못이었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엄마를 따라갔던 어린 아이 한명이 계곡물에 손을 씻다가 발이 미끄러져 그만 물에 휩싸였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 꼬마는 물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갔다. 졸지에 아이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그 아이를 구하기위해 한 자매가 물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분이었는지 아이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계곡의 바닥은 미끄럽고 물살이 빠르고 깊어서인지 아이를 좀처럼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그때 아이 엄마는 아이가 물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없이 본능적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밑에서『와』하는 소리와 함께『사람 죽어요』『살려주세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밑을 보니 물속에서 아이를 잡고있는 자매가 보였고 또 그 밑에 넓고 깊은 물속에서 물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노오란 티셔츠를 입고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그분은 익사직전이었다. 물가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자매를 구하려고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아이고 큰일났네, 사람죽네』나는 정신없이 달음박질을 쳐서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인지 후인지 모르지만 난 수영을 못하는데, 겁이 나는데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나는 수영을 잘못한다. 더더구나 익사하기 직전에 놓여있는 사람을 구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나는 개헤염을 쳐서 아기 엄마 가까이에로 다가가서 팔을 잡아끌고 물 가장자리로 헤엄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호흡이 가빳다. 물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무엇이 나를 꽉잡아끌고 있는 느낌이 왔다. 물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죽음이 닥쳐온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죽어서 안되는데 하는 짧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아기 엄마가 나를 붙잡고 늘어졌는가보다. 그때 내게는 죽음이 다가섰던것 같다. 이렇게 죽는구나하며 몸이 잠시 물위에 떳을때 나를 향해 팔을 내밀며 뛰어드는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분의 팔을 잡았다. 그뒤로 어떻게해서 내가 물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를….

나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교장 선생님도 나를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분이나 내가 아는 일은 주위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이야기에 의해서이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교장선생님도 물 속으로 끌려들어 갔었단다. 나는 아예 주어버린 것 같았단다. 그때 마침 한 할머니가 긴 소나무를 하나 주워와 그것을 이용해서 물밖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는 자매가 놓쳐서 또다시 위험에 처한 것을 운전기사가 구했단다. 그때의 상황을 쉽게 여러분들이 그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순식간에 6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곳에서 물에 빠져 죽을뻔한 것이다. 누가 그런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10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6명이나 되는 사람이 구천동 계곡에서 물귀신이 될뻔한 일을… 우리 모두는 유한한 인간인 것이다.

물밖으로 나와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으면서도 얼마나 나는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에 눈에 비쳐지는 하늘과 구름과 나무의 푸르름은 이제와는 다른색이요, 다른 느낌이었다. 아! 내가 다시 하늘과 나무와 구름을 볼 수 있다니 그것은 은총이었다.

구천동에서 돌아와 내방에 들어 섰을때 나는 성모님 앞에 엎드려서 울었다. 나를 지켜주셨음에 감사하면서….

이상과 같은 구천동 사건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나는 배운 것이 있다. 사람은 한치 앞을 못내다 보는 유한한 자이므로 항상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란 말대로 평상시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 하는일을 성심성의껏 함으로써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 우리의 삶에 버릴 것 버리며 살기로 한 것이다. 만일 내가 그때 무주구천동에서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부끄러운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신자들이 내방과 서랍을 정리하면서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을것 같았기 때문이다.『신부가 별거을 다가지고 있어 이것좀봐. 아니 이런것도 있네』 그러므로 나는 평소에 버리기로 한 것이다. 물건이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인간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림으로써 홀가분하게 떠날 준비를 하기로 한 것이다.

또 평상시에『내가 하느님의 사제다. 하느님 앞에 서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음가짐 으로 삶으로써, 삶을 성실하게 가꾸어 하느님이 나를 부르실때 기꺼이 응답하기로 한것이다. 시편 저자의 말대로 길어야 60, 근력이좋아야 80년인 우리네 인생길 버릴것 버리고 살아가자.

그날 나는 죽은 것이고 지금은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이기에 난 더욱 성실하게 살어간다. 인생에도 가을과 겨울은 있는법이다.

잊지말자. 우리 모두 떠나야할 인생임을… ….

이상각 신부 ㆍ 수원 지동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