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예수님 별명은 ‘임마누엘’

장재봉 신부rn(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9-12-17 수정일 2019-12-17 발행일 2019-12-25 제 317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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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낮미사)
제1독서(이사  52,7-10) 제2독서(히브 1,1-6) 복음(요한 1,1-18)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작은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기 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아기가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기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 어두운 속에서 깊은 잠에 빠진 세상을 깨우십니다.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은 인간의 지각으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힘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계십니다. 오직 하느님만 의지할 때에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 낳은 아기를 통해서 낮고 허약한 이들의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낮은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들려주십니다.

문득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본명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수백 년 전에 이사야 예언자에게 일러주신 당신 아들의 이름이니까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사 7,14)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우리 하느님, 당신의 외아들에게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며 험한 세상을 살아갈 당신 아들을 위로해 주신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아들을 힘없는 작은 아기로 보내며 마음이 너무도 쓰라려서 ‘늘 함께 계실 것’을 꼭꼭꼭 다짐해 주셨던 것은 아닐까요?

마음이 애달파 울컥했습니다. 이야말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먼저 찾으신다는 증거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난한 들판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셨던 것이라 다시 새겼습니다.

이렇듯 임마누엘 주님은 세상의 삶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 우리를 괴롭히는 상황들을 해결해주시려 늘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복잡한 올가미에 얽혀들어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멍에를 풀어 해방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압제자들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어버리는 분이십니다. 더해서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것, 잔혹한 채찍 같고 후려치는 막대기 같은 막중한 삶의 문제들을 모두 맡아 주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상 최대 최고의 사건입니다. 성탄절은 인간에게 최대의 축제일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베르나르디노 파솔로의 ‘탄생’(1526년 작품).

루카 사도는 천사들이 한밤중에 양 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전할 때에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날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모든 백성, 국적도 남녀차별도 없이,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언했다고 전합니다. 때문일까요? 우리는 흔히 애잔하고 따뜻한 성탄 이야기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요한 묵시록에 담긴 성탄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묵시 12,2-5) 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성탄 소식이라니, 섬뜩하고 살벌합니다.

그럼에도 땅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을 삼켜 버리고 인간의 구원을 막으려는 사탄의 악랄하고 집요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요한이 기록한 이 예언이야말로 주님 성탄 대축일의 진짜 의미를 잘 알려주는 것이라 싶습니다. 이렇듯 똑 부러지게 실현되고 있는 주님의 예언에 두려움이 돋습니다.

세상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주님의 뜻은 외면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애가 타실 것입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세상이 너무나 안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미에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성탄의 참 의미를 강조해 놓으신 것이라 이해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을 알리는 수많은 예언 가운데 가장 초라한 이사야의 예언을 택하여 땅에 오신 그분을 뵙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이 구원이며 희망이며 축복이라는 예언자의 외침을 듣습니다.

이 모두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사랑에 젖어 빛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고귀한 일깨움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백성, 그분의 구원을 받은 이들을 향한 기쁨의 선포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고 마음에 간직하라는 주님의 애틋한 당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벅찬 은총에 마땅한 화답을 드리는 존재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루카 2,40) 받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오신 주님을 맞아들이며 삶의 왕이신 그분께 맞갖은 경배를 올리며 내 온 것을 봉헌해 드림으로써 그분께만 의지하여 평화를 누리게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 냉대 당하는 당신 아들이 애처로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당신 아들의 탄생소식을 “수많은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시어 찬미가 온 우주에 울려 퍼지게 하십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천사의 외침에 온 세상이 깨어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단 하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를 극진히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믿는 일이 가장 복된 삶의 비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아기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울고 있는 아기의 울음에 귀를 기울여야 옳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아기를 도와야 마땅합니다.

그 첫걸음은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오직 복음으로 무장시키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늘의 용사의 삶은 요란하지도 사치하지도 않다는 점을 명심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 낮고 낮은 땅에 임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처럼 영광된 삶을 살아내기 원하시는 하느님의 고백이 온 땅을 적시고 있습니다.

이렇듯 가까이 오시어 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드리기 위해서 알몸으로 떨고 있는 아기 예수님께 마음과 시선을 모읍시다. 하여 “임마누엘” 주님처럼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은 복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최고의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으며 최고의 즐거움을 선물해드리는 성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재봉 신부rn(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