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순교자 성월을 보내며 / 민경화 기자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09-24 수정일 2019-09-24 발행일 2019-09-29 제 316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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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 그 어귀에 있는 하우현성당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8월 하순, 취재를 위해 하우현성당을 찾았고 100여 년 전 이곳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신앙선조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앙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이곳은 시간이 흐르며 큰 도로도 생기고 집들도 들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모습을 갖췄지만, 주변을 감싸고 있는 우거진 나무와 풀들은 그 당시 생활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을 뿐 아니라 먹을거리도 넉넉지 않았을 산중 생활. 하우현 일대 교우촌에 숨어있던 신앙선조들은 낮에는 밖에 다니기 어려웠다. 땅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았다는 뜻으로 이곳은 ‘토굴리’라고도 불렸다. 실제로 이곳에서 사목한 볼리외 신부는 청계산 중턱 동굴에 숨어 한국어를 익히고 밤마다 교우들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나는 천주교인이 아니오.” 이 말 한마디면 고초를 겪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수많은 신앙선조들은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들에게 신앙은 곧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순교자들의 죽음만이 아니다. 그들이 삶 안에서 실천했던 이웃 사랑과 희생, 그리고 깊은 신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전히 우리는 신앙을 멀리하라는 유혹과 맞닥뜨린다. 전보다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신앙을 버리라고 손을 내민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며 우리는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며 지금의 신앙을 왜 지켜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민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