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소의 온상] 1. 원주교구 풍수원본당

이연숙 기자
입력일 2019-09-05 수정일 2019-09-05 발행일 1987-04-19 제 155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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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31명ㆍ수도자 수백명 배출
60여년 전통 「성체대회」가 성소 밑거름
2대 정신부「성심학원」설립 성소계발 자극
“이 아이는 신부됐으면 좋겠다” 한마디에 절대 순명
구교우들이 모여사는 신자촌을 중심으로 대대로 많은 성직ㆍ수도자들이 배출돼 왔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성소의 샘물이 끊임없이 샘솟는 성소의 마을을 찾아가 어떤 환경 속에서 성직자들이 많이 배출됐는지를 알아보는 「성소의 온상」을 신설, 핵가족 시대를 살고있는 오늘의 성소 문제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풍수원은 박해시대 신앙 선조들의 얼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도 지방 선교의 터전. 지금까지 31명의 성직자와 수백명의 수도자를 배출, 성소의 온상으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해 온 풍수원은 이제는 전국의 신자들이 찾아와 삶의 활력을 얻고 가는 신앙의 고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도시화 현상으로 이농신자가 늘어 직접적인 성소자 배출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신앙 유산을 지키려는 일부 후손들의 열의가 그 전통의 맥을 이어주면서 이곳을 찾는 수많은 순례객들에게 성소의 계발ㆍ육성에의 의지를 북돋워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성소의 못자리로 부상되고 있다.

60여년 전통을 이어온 「풍수원 성체대회」로 유명한 풍수원에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8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때 부터이다. 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들어 형성된 교우촌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룩된 것으로 알려진 풍수원은 치악산 줄기인 승지봉 기슭에 자리한 산간벽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신자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목자없이 20여년간 신앙생활을 해 나갔다.

1887년 5월 한ㆍ불조약으로 신앙자유가 선포된 후 1년 후 빠리외방 전교회 르메르 신부가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이 당시 관할지역은 춘천ㆍ원주ㆍ강릉 등 12개군 29개 공소로 신자수는 2천여 명에 달했다.

르메르 신부에 이어 1895년 정규하 신부가 부임, 1943년 선종 때까지 무려 48년간을 이곳에서 사목하며 풍수원 전교의 기틀을 잡았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성소자가 배출됐으며 1909년 김윤근 신부(작고)가 이 지역 첫 사제로 서품됐다.

정신부는 부임직후 성심학원을 설립, 한글 한학 문학 수학 역사 등을 가르쳤는데 이 학교가 성소계발에 더욱 자극을 주기도했다.

초기 목자없이 지내던 시절에 사제의 필요성을 절감한 신자들은 『이 아이는 신부가 됐으면 좋겠다』은 신부의 단 한마디 말에 절대 순명했고 아이들도 부모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성소를 키워갈 수 있었다. 또 산간벽지에서 신학문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신학교였기에 성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수 밖에 없었다.

현 풍수원본당 김윤식 회장은 『옛날 신자들은 사순절에는 제의방서 요 하나만 덮고 자며 극기했고 보속으로 맨 밥 먹기ㆍ성당 신발장 앞에 서서 미사 참여 하기 등을 아무런 불평없이 실천했다고 들었는데 이같은 신덕의 힘이 바로 성소자를 많이 배출하게된 이유중의 하나였던것 같다』고 전했다.

또 조규남·조규덕 형제신부의 아버지 조달환씨는 『과거에는 신자들이 신자촌에 살아야만 영혼구령을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현재도 이곳에 성당이 없다면 벌써 이곳을 떠났을 신자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털어놓으면서『이 지역을 지켜주고 있는 성당이 무엇보다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풍수원 성당은 1907년 건립됐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있는 이선영씨(73세)는『신자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성당에 나와 벽돌을 나르며 성당 짓는데 한마음으로 뭉쳤다는 얘기를 당시 성당을 건립한 외삼촌 정규하 신부로부터 들었다』고 전하면서『신자들이 성당에 모여 함께 바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성소계발에 또 다른 힘이 된 것은 1920년부터 성체 성혈 대축일에 실시되는 성체 거동행사. 6.25때 3년을 빼놓고 한해를 거르지 않고 이어온 성체대회는 금년으로 64회째를 맞는다.

그런데 6.25동란을 거치고 도시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곳을 떠나는 구교우신자들이 늘어만 가 어찌보면 풍수원도 어느 시골마을처럼 쇄락해가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그러나 박해를 피해 지켜온 신앙의 힘이 끈기있게 내려오면서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도시본당 신자들에게 포근한 신앙의 고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지 풍수원본당은 11대 주임 김한기 신부가 사목을 맡고 성지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1대 故 김윤근 신부를 필두로 풍수원 출신 사제 31명 중 현재 각 교구에서 사목중인 사제는 20명. 수도자는 현재 30~40명 정도가 활동 중이고 지금까지의 숫자는 수백명에 이르나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풍수원 출신 활동사제 20명은 다음과 같다. ▲원주교구 최기식ㆍ신현만ㆍ박순신ㆍ박호영 조규남ㆍ조규정ㆍ김영진 ▲춘천교구 송성식ㆍ송문식ㆍ박영구ㆍ송병철 ▲서울대교구 송순용ㆍ손희송ㆍ김수길ㆍ방학길ㆍ조학문 ▲대구대교구 이종흥 ▲부산교구 이경우 ▲마산교구 최동오

이연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