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프랑스 르페브르 대주교 파문 해설

강동수 기자
입력일 2019-08-30 수정일 2019-08-30 발행일 1988-07-10 제 161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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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서 금한 주교서품으로 파문

복고주의 고수, 라틴어로 미사
70年「성 삐오 10세 사제회」조직
68년 이래 교황청과 충돌, 76년 성무집행 중지처분 받기도
프랑스의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82)가 최근 바티칸의 지시를 거부하고 지난 6월 30일 자의로 4명의 주교를 서임함으로써 가톨릭교회는 1백여년 만에 또 다시 파문이란 큰 상처를 안게됐다.

지난 30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주교서품을 반대하는 공식적「권고」를 받았음에도 불구, 자신이 창설한 스위스 알프스 산록에 있는 에콘신학교에서 7천여명의 추종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주교서품식을 가지고, 프랑스ㆍ스위스ㆍ스페인 영국인등 4명을 주교로 서품했다.

이러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행동에 대해 바티칸은 교회법상 교황이 승인하지 않은 주교서품식을 강행할 경우 르페브르 대주교는 물론 서품 받은 사람들도 자동 파문당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르페브르 대주교가 서품식을 강행하자 즉각 이들에 대해 파문조치 했다.

이번에 파문당한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동안 교회 내에 알려진 보수주의자로서 교회의 쇄신과 전례의 토착화에 이정표가 됐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어온 인물이었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그의 추종자들은 각국교회들이 자국어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에 반발해왔으며 교회가 성문제에 지나치게 관대하며 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서도 타협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새로운 시대의 움직임에 발맞추려는 교회의 쇄신과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에 대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이러한 보수적인 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해석을 둘러싸고 1968년 이래 바티칸과 충돌을 빚어왔으며 1976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무집행중지처분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르페브르 대주교는 바티칸이「신앙의 장애」가 되어왔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거짓신의 사도이며 반 그리스도교적 현대주의 대표자」라고 비방을 되풀이해왔다. 또한 그는 진정한 가톨릭신자는 그러한 교황과 교계제도에대해서 의무를 지니지 않을 뿐 아니라 바티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찬의 임무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반교회적인 언동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다른 종파로 분리돼 나갈 경우 미칠지 모르는 교회의 이미지 및 파란을 피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그를 설득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가 지난 5월 5일의 요세프 라칭거 추기경과 르페브르 대주교의 만남이었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교리문제에 관한 교황의 측근 고문인 라칭거 추기경은 수개월간에 걸친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합의에 도달, 르페브르 대주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한 사목을『전통에 의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인정하고, 바티칸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추천한 4명중 1명을 주교로 서품하도록 인정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이 서명한 합의를 깨뜨리고 다음날인 5월 6일 기자회견에서 멋대로 합의안을 비난하고『4명 모두의 서임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르페브르 대주교 및 그의 추종자를 설득하여 교계제도 내로 수용하려는 바티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완고한 보수적 신자를 추종자로 갖고 있는 르페브르 대주교는 18년 전「성 삐오 10세 사제회」라는 분파를 창설한 이후 2백60여명의 사제를 서품해왔으며 이밖에 2백여명의 신학생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서독, 미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본산지인 스위스「에콘」신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5백여개의「예배장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에 이르는 「신심 깊은 동조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에콘」의「사제회」본부의 사제들은 오전 6시에 기상, 구식수단을 입고 구식 라틴어 예식으로 성무일도, 묵상, 미사봉헌 등의 사무를 보고 있으며, 양조용 포도밭을 경작, 직접 포도주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수백만의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정통 로마가톨릭신자들에 의해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데「파리」대교구 대변인 장미셀 디파코 신부는『이 운동의 세력이 프랑스에서 3만, 세계적으로도 50만을 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1870년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훈령에 반발하여 교회를 이탈한「고(古)가톨릭신자」들이 결국 미국, 네덜란드 등지에서 불과 수십만으로 위축된 것과 비교해본다면, 이번 파문된 르페브르대주교의 사제회도 소수의 추종자만 가진 뒤 몰락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가톨릭교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그러나 그 숫자상의 세력이 어떻든 간에 르페브르 대주교의 전통주의적 운동이 신앙과 전례문제에 있어 교회의 궁극적인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티칸의 다음 조치가 주목되고 있다.

강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