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컴퓨터로 그린 꽃, 삭막한 도심을 밝히다 - 그래픽 아티스트 김석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7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9월 8일까지 김세중미술관
픽셀 하나하나가 만든 작품
상상력 발휘해 다양한 시도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자신의 작품 ‘나비랑 날다’ 앞에 선 김석 작가.

“인간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느낄 수 있어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자연이지요.”

컴퓨터로 자연을 그리는 그래픽 아티스트 김석(라파엘·수원교구 분당 성루카본당) 작가가 김세중미술관(관장 김녕)에서 개인전을 연다. ‘꽃을 그리다(Missing Flower)’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기법으로 그려낸 꽃과 나비, 정원 등 4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강남에 살았어요. 아이들이 놀 공간이 전혀 없었죠. 집 한 채의 앞마당 크기밖에 안 되는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다가 쫓겨나는 아이들이 가엾어서 분당으로 이사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이 보이기 시작했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탄천을 거닐다 보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한 풍경은 그의 상상과 결합되면서 무한 확장과 변화를 거듭하게 됐다. 그의 작품들은 작은 픽셀 하나하나가 모여 큰 그림을 이루는데, 때로는 화려한 색감으로 때로는 흐릿한 느낌으로 표현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

‘내 마음의 정원은 단지 꽃이 만개한 정원이 아니다. 시공의 제약을 벗은 아름다운 자연의 축소판이다.’(작가노트 중에서)

김 작가는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가고, 개발로 인해 살던 흔적이 쉽게 지워져 버리는 요즘, 모든 인간의 고향인 자연을 그린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이 잊었던 고향을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상업디자인을 오래 하고 수 년간 교수생활을 하다 보니 더 나이 들기 전에 순수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컴퓨터그래픽스를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 시작한 컴퓨터 그래픽 첫 세대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고민 끝에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게 됐죠. ‘다른 느낌의 그림이 뭘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작업 초기에는 조악한 수준의 그림이었는데 점점 컴퓨터 기능이 좋아지면서 이제는 개인용 컴퓨터로도 얼마든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죠.”

컴퓨터 아트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수없이 많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은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헷갈리고 혼란스럽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무한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작품이 아닌 인쇄물과 동급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그래서 김 작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해 고유성을 높이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자연을 주로 그리다 보니 그의 삶도 바뀌었다. 작품의 액자를 따로 쓰지 않고, 도록도 비닐 코팅이 안 된 종이로 만들었다. 컴퓨터 외에 다른 재료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지라 작업 자체도 친환경적이다. 작품을 폐기하는 것 역시 몇 번의 클릭으로 끝나니 말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김세중미술관은 사실 그의 고향이자 옛 집이다. 그가 태어나 30여 년간 살았던 단독주택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선 것.

그는 고(故) 김세중(프란치스코) 조각가와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의 차남이다. 부모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전시회 개최를 고사했으나, 그의 작품에 매료된 미술관 김옥현(클라라) 학예사가 삼고초려를 한 끝에 어렵게 승낙을 얻어 냈다. 부모님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는 직접 그리고 쓴 책 「별난 이야기 별난 그림」, 「상상노트」를 내기도 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화요일~주일 오전 11시~오후 5시(월요일·법정공휴일 휴무), 서울 효창동 김세중미술관 1·2 전시실. 무료 관람. www.kimsechoong.com.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