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 본당 주보성인] 아우구스티노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6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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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이자 철학자로 수많은 저서 남겨
회심 과정 담은 「고백록」 저술  
가난한 이들 위해 앞장서기도
제2대리구 광북본당 주보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서양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학자, 영성가다. ‘은총의 박사’라는 칭호로도 불리는 성인은 제2대리구 광북본당의 주보성인이다.

성인은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어머니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성인은 철학에 매료돼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성인은 수사학을 연구해 여러 지방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신앙생활에서 점차 멀어졌다. 373년경에는 악과 존재에 관한 철학적 문제의 답을 찾으려다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타가스테, 카르타고 등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384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이때 성인은 성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났다. 수사학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성인은 어느 날 동료들이 암브로시오 주교의 수사학이 최고라고 칭송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성인은 암브로시오 주교의 설교를 듣기 위해 밀라노대성당을 찾았다. 거만한 마음으로 간 성인이었지만, 오히려 성인은 암브로시오 주교의 설교에 큰 감명을 받아 강론을 경청하게 됐다.

성인은 다시 하느님께 헌신하며 살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명예, 재산, 결혼 등에 관한 갈등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은 “집어서 읽어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그 말대로 집어서 읽은 구절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3장 13절이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성인은 그 길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친구 성 알리피우스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뤄 생활했다. 그러나 성인의 뜻과 달리 성인은 391년 사제 서품을 받게 됐고, 396년에는 히포의 주교로 임명됐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성인의 활동은 바로 학자로서의 면모다. 성인은 틈나는 대로 글을 써 자신의 개종 과정을 쓴 자서전 「고백록」을 비롯한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성인이 선종한지 15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성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교리와 신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성인은 35년을 주교로 활동했다. 성인은 학자로서도 위대한 면모를 보였지만, 동시에 훌륭한 사목자로서 평판이 높았다. 성인은 다른 사제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뤄 살았을 뿐 아니라 엄격한 규율 안에서 활동했다. 직접 예비자 교리를 맡고 주일과 축일에는 반드시 신자들을 위해 강론을 하며 가르치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는데, 주교의 직분을 활용해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가난한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사용하는 교회의 성구(聖具)까지도 팔았다고 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