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회교리를 배웁시다] 16 노동조합 - 하

이용훈 신부ㆍ수원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9-06-27 수정일 2019-06-27 발행일 1991-12-22 제 178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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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치적 목적」 파업 거부

권리보호 차원에서 실행돼야
노동조합과 파업의 실상

노동자들은 사용자들과 맞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결속할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교회는 노조에 대한 권리를 항상 인정했고 변호했으며 발전시켰다. 그래서 노조는 노동자들의 참 대변자이고 경제생활의 바른 질서를 수립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기에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보복의 위험없이 조합원들은 조합활동에 참여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사목헌장 68). 그런데 노조는 상대편 집단인 사용자들에게 대항하는 극단적 방법으로서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교회는 파업이 합법적 수단임을 인정하나, 극단적인 처방이기에 남용되어서는 안되고, 더구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노동하는 인간 20). 파업은 노사쟁의의 중심적 주제라고 볼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동맹파업, 태업, 피캣팅, 보이코트, 직장폐쇄 등으로 분류된다. 파업은 사실 사용자와 사회에 해를 주고, 노동자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간혹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파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타결될 수 없는 노동조건을 내걸거나 기업의 파괴가 목적인 동기와 이유가 불확실하고 불건전한 파업은 인정될 수 없다. 물론 어떤 종류의 파업이든지 해악은 있으나, 노동자들이 당하는 불의와 왜곡을 개선하기 위해 파업은 정당화된다.사용자측이 기본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원천적으로 거부할 때 파업은 불가피하게 일어나며, 이때의 파업은 정당한 것이다. 파업의 결과로 불행한 일들이 예측되더라도 비례적으로 보다 선한 결과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파업은 실행될 수 있다. 그럼에도 파업은 정당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일어나는 극단적이고 최종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노동의 종류나 범위에 따라서 파업을 결코 허용할수 없는 것들도 있다.

군인, 경찰관, 특수한 임무를 지닌 공무원들은 국가의 생존과 안전을 위한 일에 종사하기에 파업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특수기관들과(학교, 병원) 공동 교통통신 계통들의(철도, 지하철, 공공버스, 전신전화국, 우체국) 파업은 국민생활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기에 허용될 수 없다고 보며, 불가피한 충돌이 생길 경우 다른 조정방법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파업은 사회의 평온을 파괴하고 살인, 폭력, 혼란을 유발시키는데, 이에대한 상처는 국가가 치유해야 한다고 교황 레오13세는 지적한다(노동헌장31).극렬한 파업으로 인해 사회전체가 위협을 느끼며 노동자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기업과 공권력에 대항하여 피를 흘리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쟁의원인을 노사는 협력하여 공동선의 입장에서 파악해야 하겠다.

그런데 노조활동은 공동선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분야와 연결된다. 그러나 노조의 활동무대는 정치권은 아니다. 따라서 노조는 권력투쟁과 획득이 목표인 정당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조는 한 정당의 결정을 지지하거나 한 정당과 밀접하게 유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조가 정당과 유착하면 사회의 공동선 구현과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는데 차질을 빚게 되고 정당의 도구가 될 위험성이있기 때문이다(노동하는 인간20).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파업은 노동자들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고,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채워주는 최후의 필요한 수단이나, 가능한 한 협상과 대화를 통해 쌍방이 만족할 수 있는 타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사목헌장 68). 그런데 노조측에서 파업을 통한 힘의 지배나 힘의 논리를 이용하고 싶은 충동이 나타날수도 있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권은 인정되고 있으나 경제-사회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합당한 조건이 요청된다. 따라서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악을 예측하면서 파업의 제한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톨릭 윤리는 정당한 파업을 악한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요청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업은 전체사회에 끼칠 수 있는 효과와 영향력을 고려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건전한 차원에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파업은 정의와 인간공생을 위해 누적된 노사간의 갈등과 불만족을 표출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요구사항들이 사회전체의 공동선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생산수단의 소유체계와 생산수단의 경영방식에서 발견되는 여러가지 결함들을 시정하고 개선해야 하지만, 노조는 결코 이기주의적인 단체나 계층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노동하는 인간20). 더욱이 한 정권이나 기업에 밀착한 어용노조의 출현으로 노동자들의 정의의 외침이 왜곡되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모습은 용납될 수 없다.

이용훈 신부ㆍ수원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