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빛을 심는 사람들] 도시빈민들의 대부 김영준ㆍ김경자 부부

상인숙 기자
입력일 2019-06-17 수정일 2019-06-17 발행일 1990-07-08 제 1712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거권 확보 위한「주거연합」창립 산파역
“가진 자들의 양보 이끌어내는데 힘쓸터”
『국민 주거권 실현으로 인간다운 삶을 찾읍시다』. 지난 6월 3일 오후2시 서강대 메리홀에서는「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가칭)」창립대회가 열렸다.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도시빈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해온 김영준(토마ㆍ41세)씨와 그를 살갑게 내조해온 부인 김경자(레지나ㆍ37세)씨.

바로 주거연합이 창립되기까지 실질적인 모든 역할을 해온 이들이기도 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성장했고 따라서 삶 자체가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김영준씨는 70년부터 도시빈민을 위해 일해 온 도시빈민들의 대부라 할 수 있다.

『주거연합의 주체는 80년대초부터 지금까지「철거전쟁」에서 흩어진 대중들입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했지만 그 고통에 따른 주거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지요. 이제 스스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연합을 결성했어요』.

김영준ㆍ김경자씨 부부는 재개발지역에서 세입자로 살고 있다. 지난 88년 10월 종로구 무악동 산동네로 이사 온 이들 부부는 스스로 도시빈민이 되어 동네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한다.

김씨 부부는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부모들의 고충이 바로 자녀교육이란 점을 감안, 공부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이 지역에 있어 공부방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던 상태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지역 엄마들은 대부분 파출부ㆍ식당일 등을 하고 있다』고 밝힌 김정자씨는『이들은 무엇보다 집안일을 하면서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 한다.

양재기술을 배워 틈틈이 아이들 한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김경자씨는 경제적 가능성이 확보된다면 이웃들과 함께 하겠다고.

『도시빈민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김경자씨는 혼자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도 벅차지만 무엇보다 중학교 1학년, 국민학교 2학년이 된 남매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학교에서 아빠 직업을 물을 때마다 곤혹스러워 하는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다행히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의 일을 자랑스러워해요』

생활공동체인「복음자리」에서 7년동안 생활해 온 김씨 부부는 보다 많은 가난한 지역에 나눔의 공동체를 확산시키기 위해 무악동으로 이사했다.

『움직이는 교회가 진정 살아있는 교회』라는 김영준씨는 앞으로 주거연합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밝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서민들이「내집마련」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어느 한군데서라도「희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절망이 얼마나 깊었으면 목숨까지 끊었겠습니까?』

『주거에서의 해방은 바로 인간해방』이라고 강조한 김씨는 앞으로 강력한 투쟁보다는 가진 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쓰겠다고 한다.

『오늘날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교단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한 김씨는『교회는 가진 자가 양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촉구하는 한편 진정한 나눔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면서 실천적 현장에서 구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현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진정한 평화는 교회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 김씨부부는「평화의 청치기」역할을 소리없이 해나갈 것이라는 당찬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상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