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빛을 심는 사람들] 연희동「동네 어머니」구현숙씨

전인재 기자
입력일 2019-06-07 수정일 2019-06-07 발행일 1990-06-17 제 1709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뇌성마비에도 불구、불우이웃 위해 헌신 
매년 헌옷가지 얻어 고아원ㆍ꽃동네 보내
뇌성마비로 자신의 몸도 추스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와 기도로 바쁜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국현숙씨(안나ㆍ54ㆍ서울 연희동본당).

걸음걸이조차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헌옷가지 등을 모아 수선하여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보내주고, 병자방문 등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 도와주는 그를 연희동 사람들은「동네 어머니」라고 부른다.

또 뇌성마비로 인한 신체적 불구ㆍ남편가출 등 보통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을 헤쳐온 안나씨는 금년부터 교리통신교육회가 발간하는「믿음의 나눔자리」에서 「안나 아줌마와 나누세요」라는 난을 통해 자신의 인생경험을 들려주고, 고통과 어려움에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상담도 해주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집안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라던 안나씨는 겨우「엄마」「아빠」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평범한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험난한 길에 들어서야 했다. 생후3년만에 갑자기 뇌성마비에 걸리게 된 것. 스스로 걷는 것은 고사하고 물 한모금 마시기 위해 입안으로 들어가는 물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던 안나씨는 온갖 치료를 받으면서 국민학교에 입학, 대학에까지 진학하는 억척을 보였다. 물론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속적인 치료와 가족의 보살핌으로 몸이 조금씩 나아지던 안나씨는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 재학 중 정신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 15일만에 깨어나기도 했으며 그 후도 생을 비관하며 몇번씩이나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

대학졸업 후 결혼했으나 둘재아들을 임신했을 무렵 남편까지 가출,「자신에게만 형벌을 가하는 것」같은 주님을 원망하며 교회와 인연을 끊었다.

그 어려운 시절, 정신적ㆍ육체적 지주였던 친정어머니의 타계로 또 다시 자식들과 동반자살을 생각해야만했던 그녀는『효성지극한 자식들 속에서 주님을 다시 찾으면서 참 신앙인의 생활로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 한모금 마시는 것부터 옷입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남의 손을 빌리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저도 남을 위해 뭔가를 해야 주님 볼 면목이 선다고 생각했지요』

자신의 삶이 아닌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 몇 발자국을 걷다가 넘어지곤하여 무릎에 피멍이 들면서도 매일 이웃집을 다니며 헌옷가지 등을 얻어와 수선, 1년에 두차례 20박스 정도씩의 옷ㆍ이불 등을 고아원ㆍ꽃동네 등에 보내주고 있다.

『20여년간 냉담했기 때문에 냉담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안나씨는 냉담자 회두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어、지난 부활 때도 35년간 냉담한 사람 등 2명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만들었다.『냉담 중에 있는 사람을 알게 되면 끊임없이 방문, 기도하고 교회서적을 보낸다』는 안나씨는『최고 3년간을 지속적으로 설득、성공한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마음한몸」운동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안구를 기증하기도한 국안나씨.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안함을 자아내게 하는 몸놀림으로도 소외받고 있는 이웃을 위해 몸을 불사르며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분명 이 어두운 세상에「빛을 심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