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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북한 대변인과 대동강의 기적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3-26 수정일 2019-03-26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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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 난데없는 ‘북한 대변인’을 놓고 말싸움이 한창이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은 이제 부끄럽다”며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문이다. 이 연설 내용이 문제가 되자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외신을 통해 이미 보도가 된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전희경 대변인이 전한 외신이란 2018년 9월 26일 이유경 기자가 작성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UN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되다”라는 제목의 ‘블룸버그’ 통신 기사다.

필자는 청와대와 여당이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해 국가 원수를 모독했다고 비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 원수라 할지라도 비판이나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유경 기자에 대해 ‘검은 머리 외국인’의 ‘매국적 기사’라고 비난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즉 나경원 원내대표나 이유경 기자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먼저 나경원 원내대표는 스스로 4년 전에 했던 말을 왜 180도 뒤집었는지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언론사 기고를 통해 “이제는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하고 제2, 제3의 개성공단 설립이나 남북 FTA 체결 등 획기적인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면서, “남북이 함께 백두산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고, 금강산과 태백산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나경원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다. 북한은 그때도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유경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칭찬(praise)하는 수석대변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여전히 좋은 관계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이유경 기자의 기준에서 볼 때,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조차 김정은 위원장과 ‘환상적 궁합’(chemistry) 관계라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변인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다시금 한반도에서 갈등과 대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서로 제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예레 9,7)는 말씀이 떠오르는 지금이야말로,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말씀을 믿고 평화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할 때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