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69) 청소 구역과 회식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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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는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공동 청소 구역을 배당받습니다. 그때마다 한두 번 청소를 안 해도 티 안 나는 구역을 배당받으면 ‘랄라라’를 외칩니다. 그러나 하루만 안 해도 표시가 나는 구역을 배당받으면 긴장도 합니다. 때론 늦가을 시즌에 마당 청소를 배당받으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봄과 여름에 우아한 그늘을 제공하는 마당이 늦가을이 되면 쓸고, 쓸어도 쌓이는 낙엽 때문에….

예전에 ‘공동방’을 청소 구역으로 배당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공동방’은 평일엔 소수의 형제들이 사용하지만, 주말이 되면 공동으로 형제들이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청소하기가 조금은 수월(?)한 구역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행사가 있거나 형제들 영명 축일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런 행사가 있으면 식당에서 매일 행사를 한 후, 이어서 공동방에서 회식을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회식이 있는 날이면 그다음 날 아침, 공동방에는 청소할 것이 많습니다.

공동방 청소 구역을 배정받은 날, 그날 아침에는 시간이 없어서 청소를 못했기에 저녁 늦은 시간에 청소를 했습니다. 특히 공동방 청소를 하면서 수납장을 확인하는데, 식당에 있어야 할 물품, 예를 들어 소주와 맥주잔, 과일 깎는 칼, 접시와 그릇들, 숟가락, 젓가락 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소하면서, 그것들을 공동방 한 켠에 놓고, 그다음 날 아침 식당에 갈 때 가지고 갈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미사 후 수도복을 갈아입고, 공동방에 가서 어제저녁 쌓아 놓은 물품들을 들고 식당으로 간 후, 나중에 설거지를 할 요령으로 주방의 싱크대 안에 놓아두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나보다 먼저 식사를 마친 형제들 중에는 바쁜 일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는 형제들은 설거지하러 주방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아침, 함께 앉은 할아버지 수사님들과 대화를 하는 바람에 설거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방 안에서 형제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주방에 들어가 보니, 형제들의 대화 내용은 싱크대에 있는 술잔, 칼, 접시, 수저 등을 바라보며, 전날 회식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슨 회식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싱크대 안에 있는 것들은 어젯밤, 공동방 청소를 하면서, 거기에 있는 것들을 내가 다 가지고 내려온 것인데.”

그제야 형제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나는 또…. 술잔, 칼 등을 보면서, 어제 무슨 큰 회식이 있는 줄 알았잖아요.”

“나는 저 물품들을 보면서 나 빼고 회식을 한 게 아닐까, 혼자 그 생각을 했었는데.”

“나도 어제 나 몰래 형제들끼리만 회식을 했구나 싶어, 누군가를 원망할 뻔했는데.”

나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식겁을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설거지까지 해 놓을걸.’ 그러면서도 형제들과의 대화 내용을 통해서, 형제들이 간직하고 있는 ‘형제애’를 향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형제들이 ‘공동체 회식’이 있다면, 이유가 어떻든 간에 참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습니다.

일 년 365일, 수도원에서 형제들이 ‘형제애’ 안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항상 잘 지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때론 ‘회식’을 이유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고, 농담도 하고, 떠들기도 하면 형제애에 대한 ‘선입견’이 자연스레 사라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는 얼굴을 맞대는 시간을 잘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친교의 자리이며 동시에, 용서와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