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고맙고도 비싼 경험, 은총이었네 / 나고음

나고음 (크리스티나) 시인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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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어, 이 나이에….’ 이런 말이나 생각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무식이 힘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무한하신 예수님의 백 하나만 믿고 크나큰 모험을 감행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인생을 낭비했다는 꾸중은 듣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젊은 날 꿨던 꿈을 이제라도 펼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어학연수는 시작됐다.

20대에 꾼 꿈을 60대에 이루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 주립대학에서 20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도전이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을 맘껏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짐을 풀자마자 먼저 한인성당에 갔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성 김효임 골룸바 성당’이 있었다. 한글과 영어로 안내된 본당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 여기에서도 건재하신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교우들은 주일마다 모여 서로 안부를 나누고 식사도 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소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은근히 주일이 기다려졌다. 신부님도 교우들과 편하게 대화 나누시는 모습이 서울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라 새롭고 신선했다.

사람은 이쪽에 와야 내가 있던 저쪽이 잘 보이는 법이다. 주일에도 일찍 도착해 성당 꽃밭에 물을 주고 내 집처럼 가꾸며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구역 반장을 맡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던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올랐다.

1년 연수를 끝내고 서울에 와서 열심히 반장도 하고 ‘성서백주간’ 봉사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고맙고도 비싼 경험 덕분이었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가족을 떠나 멀리서 ‘사서 하는 고생’을 마다않는 철없는 나를 염려하신 예수님은 힘들 때마다 협조자를 보내시어 나를 감동시키곤 하셨다. 연수 중간쯤 뉴욕에 갔을 때도 한인성당 교우의 친척을 부르시어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귀빈을 모시듯 기꺼이 먹여 주고 재워 주시는 주님의 종을 만났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나와 동행하시면서 많은 은총을 사람을 통해, 이웃을 통해 주시면서 나도 누군가의 고마움이 되라 이르셨다.

성 김효임 골룸바 성당은 미지근한 내 신앙생활에 소중한 성소가 됐고 달고 시원한 영혼의 물을 맘껏 마실 수 있는 야곱의 우물이 됐다.

성 김효임 골룸바 본당에서 간 산티아고 성지순례도 뜻밖의 선물이었고, 그 선물은 나에게 참 많은 울림을 주었다. 나를 마구 흔들었다가 바로 세워 준 순례길, 그 길 위에서 비를 맞고 걸으며 신부님께 고해성사 드린 일은 지금도 가슴에 한 폭의 수채화로 남아 있다. 이끼가 두껍게 덮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수고했다. 어서 와 쉬어라.”

마지막 학기를 포기하고 간 성지순례! 자연을 통해, 사람을 통해, 기도를 통해 겪은 고맙고도 비싼 경험, 모든 것이 은총이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고음 (크리스티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