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67) 들뜬 마음과 경각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4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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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모 대학 교수님이 어느 지역 답사를 가는데 내게 수도원 차량 대여와 운전 부탁을 했습니다. 그분이 있는 대학에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하는데, 그다음 날 심포지엄과 관련한 지역을 답사 가는 일정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나는 그분이 심포지엄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출발 며칠 전에, 원장 수사님에게 말씀을 드려서 12인승 승합차를 배차해 놓았고, 출발 당일 날 이른 시간에 그 대학 정문에서 그분의 일행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출발 당일, 나는 새벽에 일어나 혼자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루를 주님께 의탁했습니다. 그리고 승합차를 몰고 약속 장소인 그 대학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시간이라 한산해서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아침식사로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승합차 시동을 켜고 후진을 하는데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아…, 차를 박았구나.’ 시동을 켠 채 차 밖으로 나와서 보니 비싼 외제차의 뒷 범퍼 부분을 살짝 박은 것입니다. 한숨을 쉰 후 차 주인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건물 안에서 차 주인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니, 차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신의 차량을 살펴보고, 범퍼 사진을 찍고 난 후 나에게 ‘어떻게 하실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보험 처리하겠다’고 했더니, 자신도 자신의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할 테니 나에게도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속으로 ‘왜 승합차의 후방 센서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왜… 왜… 왜….’

아무튼 보험 처리를 한 후, 차 주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 보험회사에서 견적이 나왔는데…. 돈이 아주, 아주 많이 들었답니다. 우리 수도원 형제들이 위로하기를 ‘이럴 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드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는데, 나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날 정말로 운전하기 싫었고, 공동체 형제들에게 미안하고! 하지만 중요한 약속이라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약속 장소로 갔더니,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온 학자와 한국인 학자, 그리고 나와 잘 아는 교수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사고 낸 티를 내지 않으면서,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답사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틈틈이 보험회사에서 전화 오면 조용히 처리를 하면서 답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날까지 학자들과 답사를 다닌다는 들뜬 마음도 가라앉았고, 나 또한 그분들과 진지하게 답사 지역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떤 곳은 지도에서 없는 곳이었고, 또 어떤 곳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라 찾기 힘들었고, 또 어떤 곳은 도로 폭이 좁아서 하마터면 바퀴가 빠질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운전함으로 인해 그분들도 편안하게 답사를 다녔습니다.

마지막 답사 일정을 소화한 후, 다시 그 대학 정문으로 와서 그분들을 내려 드리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운전하면서, 아침에 왜 사고가 났을까를 또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하루 종일, 가벼운 접촉 사고로 인해, 하루 종일 무척 신중하게, 차분하게 운전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답은 아침에 냈던 가벼운 사고로 인해서, 그날 힘든 답사 일정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들뜬 마음에 경각심을 일으키려고 나의 수호천사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내도록 한 것이라는 즐거운 결론도 내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날 하루 일정의 풍요로움에 비하면 접촉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쉬지 않고 궁시렁, 궁시렁! ‘들뜬 마음에 경각심을 주려고 접촉 사고를 내도록 했다면 좀 싼 차를 고르지, 하필이면 가장 비싼 외제차를….’ 궁시렁, 궁시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