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동방박사처럼 참 빛을 증언하는 삶을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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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 (이사 60,1-6)  제2독서 (에페 3,2.3,.5-6)  복음 (마태 2,1-12)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것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빛이 우리 마음을 밝혀 성탄의 기쁨을 새롭게 하고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리며 빛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해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전하는 동방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는 예수님 성탄의 특별한 기원과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출신지와 방문자의 수는 복음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러 온 그들의 지위와 품격에 비추어 강생의 신비와 구원의 보편성이 드러납니다.

동방 ‘박사’(Magi, 현자)의 일화는 구약성경에 이민족 왕들이 메시아격인 왕에게 선물을 가져오거나 축복한 전승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발라암(Balaam)의 신탁(민수 23장), 스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1열왕 10장), 아라비아와 스바 왕들의 조공(시편 72)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사’는 고대 메디아(카스피 해 남부왕국)와 페르시아 제국(이란과 이락)의 통치자에게 정치와 종교의 자문역을 수행하던 고위직입니다. 로마제국주의에 반대하던 그들은 새 ‘유다의 왕’이 등장하여 동방 왕권을 회복한다는 소망을 간직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하고 묻습니다. 당시 헤로데(안티파스)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헤로데는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메시아가 태어날 곳을 묻습니다. 예언서(미카 5,1)에는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에 ‘하느님의 집’으로 알려진 작은 고을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별을 보고 먼 길을 온 동방 박사들이 새 임금을 찾는다는 말에 위협을 느낀 헤로데 안티파스는 박사들을 은밀히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알아보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아기의 처소를 비롯해 자세히 알아보라(마태 2,7-8)고 부탁합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중동사회에서 비밀리에 조사를 한다는 것은 수치요 위협적인 음모입니다.

계시를 받은 박사들은 그의 위선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에 분노하여 무고한 사내아이들을 살해(마태 2,16)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별이 앞서가다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있는 곳에 멈춥니다. 박사들은 모든 민족들의 대표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경배를 드린다는 것은 ‘지극히 높은 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세 가지 선물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성탄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새 희망이 이루어진 사실을 유다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방인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향해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고 선포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 빛을 향하여 모여든다고 전합니다.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산악지대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이요 충실한 믿음의 상징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 말씀에서 성령을 통해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한 몸의 지체가 되고 약속의 공동상속자가 된다”(에페 3,6)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신비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져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에 현존하십니다.

지오토의 ‘동방박사의 경배’.

주님 공현은 앞으로 세례축일과 가나의 혼인잔치로 이어집니다. 교회 전례를 통해 예수님의 신성이 이민족에게 드러난 동방박사들의 방문,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난 주님 세례, 교회에 드러난 가나의 혼인잔치의 역사적 사건을 경축합니다.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섬기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완전한 계획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나아가 세례를 주라는 사명을 부여하심(마태 28,19)과 괘를 같이합니다.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빛의 자녀요 성체를 모시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혼인잔치에 신부인 교회를 통하여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갈망하는 사람에게 사명의 길을 열어줍니다. 별을 바라보고 진리를 탐구한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별빛보다 강한 태양이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빵의 집’인 베들레헴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그리스도인들 내면의 성전에 함께 하십니다. 빛의 자녀가 ‘빛에서 나신 빛’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니 더없이 기쁩니다. 별이 비추는 베들레헴은 이제 더 이상 작은 집이 아닙니다. 참 빛으로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경배를 드립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형제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선교의 깃발을 높이 드는 것이 주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위선과 두려움을 뿌리치고 새 복음화의 길로 나아갈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새해도 빛 속을 성실히 걸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 강생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이 길은 인간의 말과 지혜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에게 자비의 손길과 형제애를 나누는 애덕의 실천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