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마음이 지척이면 천릿길도 지척이다 / 김후란

김후란 (크리스티나) 시인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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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이렇게 창밖이 쓸쓸할 때는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미뤄놓았던 책을 읽는다.

그런데 오늘은 공연히 마음이 심란하다. 타국에 사는 너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받을 수 있는 시간인지 몰라서 무료통화가 가능한 카카오톡으로 보이스톡을 요청했다. 몇 번이 울려도 대답이 없다. 아, 지금 그곳은 한참 분주할 시간이지. 아쉽지만 스마트폰을 끄고 이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아들 승현아,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긴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어느 해였던가, 너희 가족이 다 서울에 와서 함께 성탄절을 지내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 한 해는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는 내 쪽에서 너희에게로 가서 함께 지냈던 즐거운 추억이 생각난다. 이렇게 일 년씩 교대로 오가며 연말을 지내자고 약속도 했었건만, 몇 차례 움직여보다가 일이 생겨 그나마 몇 해씩 건너뛰기도 했지.

온가족의 얼굴을 마주 보며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보는 기쁨. 그런 것이 이제는 각기 바쁜 인생살이 속에 묻혀 버려 허전한 감을 지울 수가 없구나. 특히 세모, 크리스마스, 정초 같은 때는 살얼음이 덮인 추위같이 가슴에 살포시 끼어드는 섭섭함을 숨길 수 없단다.

네가 군 복무할 때 내가 하도 자주 편지를 써 보내서 동료들 보기 민망하다고 투정도 부렸던 게 생각난다. 또 네가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생활근거를 잡고 결혼도 하는 동안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자주 전화 통화나 편지로 풀곤 했지. 네가 마음 바쁠 때는 그런 게 번거롭게 느껴졌으리라 짐작된다.

옛날에 시인이며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님과 이따금 오찬을 함께 했는데, 사랑하는 따님이 미국에서 학자로 살고 있어서 매일 전화비용이 엄청나게 들지만 그게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양쪽 손목에 하나씩 손목시계를 차고서 하나는 서울의 시간, 또 하나는 미국에서의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늘 함께 있음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만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지구 반대쪽에 사는 너희와 마음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고 산다는 건 알아주기 바란다.

근래 내가 문학지에 ‘오늘은’이라는 시를 썼다.

‘적막한 밤 / 어둠이 깊어간다 /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은 / 목마른 심정 //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 문자 편지를 쓰고 / 4차원 컴퓨터 속에서 / 미래의 옷을 고른다 // 그러나 / 닫힌 귀를 열고 싶다 / 막힌 골목 같은 / 마음을 트고 싶다 / 울림이 있고 / 감동의 물살이 지는 / 뜨거운 시간이 그립다.’

이 시를 읽고 여러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현대사회의 변화된 삶의 자락에서 공감되는 게 컸던 모양이다. 바다 건너 먼 거리에 살고 있는 너에게 펜으로 쓴 편지를 항공편으로 부치는 수고를 덜려고 즉석에서 문자로 주고받는 우리네 바쁜 생활이지만 마음의 끈을 놓지 말고 지내자. 마음이 지척이면 천릿길도 지척이라는 말을 우리 가슴에 담고 지내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후란 (크리스티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