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군인이 선교사로 거듭난게 기적이죠” 61세 늦깎이 신자 된 뒤부터 10년 가까이 군선교에 매진 각종 교회문헌 연구하며 교리교육 교안도 직접 만들어 ‘새복음화·패러다임 변화’ 강조
‘기적’을 믿는 것은 신앙인의 한 요소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신앙인은 성경 속 기적들만큼이나 자신이 신앙 안에서 체험한 일들을 기적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백인기(요한 사도·73) 군종교구 육군 제32보병사단 한밭본당 군선교사는 “제 삶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한다. 백인기 군선교사가 말하는 기적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 믿기 힘든 기이한 사건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숨을 쉬고 아침에 눈을 뜨는 평범한 일상을 기적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백 선교사는 1969년 8월 육군 포병 장교로 임관한 뒤 1993년 9월 중령으로 전역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인생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한 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 그랬던 그가 2006년 10월 61세라는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거듭나 2009년부터 군선교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 있다. 백 선교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신은 죽었다’는 철학자 니체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철두철미한 무신론과 불가지론으로 무장해 하느님을 거부했다. 장교로 군생활 하면서는 대위 때 군단장(중장)과 ‘맞짱 토론’을 벌일 정도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면도날’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부하들과 아내에게 냉혹한 인물이었다. 유아세례를 받고 무신론자 군인과 결혼해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던 아내가 애처로워 ‘아내 조당이라도 풀어주자’는 생각에서 전역하고도 13년이나 지나 관면혼을 받았고 곧이어 영세했다. 백 선교사는 “제 영적 나이는 이제 13살”이라며 “신앙인이 되고 확실히 깨달은 것은 하느님은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교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례성사로 완전히 거듭난 후 운명적으로 택한 길이 군선교사였다. 10년 가까이 군선교사로 활동하며 군인 간부 신자와 군 가족, 훈련병들에게 교리교육을 1100여 회 맡는 동안 단 한 번도 교리 시간을 빠뜨린 적이 없다. 집안에 수시로 대소사가 생기고 몸이 갑자기 아플 법도 하지만 백 선교사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시간만큼은 그 모든 일들이 비켜 지나갔다. 새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1100회가 넘는 군인 교리교육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백 선교사 자신의 표현대로 ‘기적’이다. 2009년 10월 대전과 충청지역 군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대건선교회’를 결성하고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본당에서 활동할 계획을 세웠지만 준비 부족으로 잠시 좌절했다. 실망하지 않고 1년여를 더 매진해 2011년 6월에 충북 증평 37사단, 같은 해 7월에 32사단, 2012년 충남 조치원 방공학교, 2013년에는 충남 유성 자운대(교육사령부)에서 군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2015년 군종교구 군선교단에서 나이 정년(만 70세)으로 은퇴한 후에는 32사단 한밭본당 주임신부 위촉으로 군선교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희한하게도 32사단과 37사단을 동시에 맡을 때는 교리시간이 32사단 오전, 37사단 야간으로 나뉘고 자운대와 32사단이 중복될 때는 자운대 오전, 32사단 야간, 자운대와 방공학교가 중복될 때는 자운대 목·금요일 야간, 방공학교 수요일 야간으로 기가막히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현재는 32사단에서 주일 오전에 기간병과 간부, 군인 가족, 주일 오후에는 훈련병, 토요일 오후에는 방공학교 군인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친다. 요즘은 군인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져 한 달 평균 10여 명이 세례 받고 있지만 백 선교사에게 그동안 교리를 배우고 세례 받은 군인이 1000명 이상이다.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