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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새로운 9·19 시대를 맞이하며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10-02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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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북한의 파격적 환대는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공항으로 직접 마중을 나왔으며,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언행을 보여줬다. 북한군은 예포로 환영하고,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사열을 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산행을 직접 제안하고 함께 산에 올랐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명의 북한 주민 앞에서 약 7분 동안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연설을 했다. 올해 들어와 세 번째의 정상회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기로에 선 북미 관계의 새로운 모멘텀을 살릴 수 있는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때문에 필자가 가장 감동스러웠던 것은 두 정상이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한반도를 만들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남북 정상이 공동선언을 발표한 9월 19일은 13년 전,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협상과 교착을 반복하면서 지리하게 진행했던 6자회담에서 드디어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던 날이다. 이날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13년 전의 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를 바탕으로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원칙적 천명을 했다. 이번 ‘9·19 남북 정상 공동선언’에서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 남북한이 주도해 한반도 평화의 선순환을 만들고, 이를 통해 북미 평화 협상을 견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조정에 따라 수립되는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남북이 서로를 믿고 함께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를 선언하기까지 1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공동선언 발표로부터 약 1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로 공동선언을 환영했다. 그런데 이 트위터에서 공동선언에 명시되지 않았던 ‘북한의 핵사찰(nuclear inspection) 수용’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북미 협상을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별도의 대미 메시지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 완성 등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시 착수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제 한반도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다시 시작될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막혔던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튼 것일 뿐이며, 이 여정에 어떤 난관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라는 말씀처럼 이 여정을 걷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행복이고, 감동이다. 그러니 담대하게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자. 남북이 불신과 전쟁의 지난 역사로 되돌아갈 다리는 불태워 없애자. 남북이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 평화의 길로 나아가자.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