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길에서 도망치고 싶은 유혹이 나를 흔든 적 있다. 인간적인 나약함과 게으름 앞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 할 때도 있었다. 교회의 현실에 절망을 느끼며 이를 안주삼아 술을 많이 들이켠 날수도 적지 않다.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온갖 꼼수들을 부리며 허무한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못난 나를 주님께서는 교회의 사제로 선택해 주셨다. 부족함 투성이 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목생활 속에 늘 함께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다.

주님의 엄청난 사랑과 함께 내가 희망을 갖고 힘을 내어 사제의 길을 달려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동창사제들이다. 지난 시간들 속에 동창사제들은 가장 귀한 보물임이 틀림없다.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장난 끼를 늘 품고 있는 맏이 영삼이형. 낯선 환경에서 맡겨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며 생활하는 한국외방선교회 소속 혁주형, 낙윤이형, 정환이형. 특이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능력자 동조형. 우리 반의 성모회장 종권이형. 담배 사랑이 남다른 대근이형. 자동차까지 팔아 보태며 새 성당 건립에 ‘올인’하고 있는 지원이형. 신학교에서 사제양성에 힘을 보태고 있는 호준이형과 별명이 헐랭이인 의태. 얼마 전 늦은 나이에 공부하러 떠난 희성이형. 하얀 피부에 미소가 아름다운 원기형. 선한 마음으로 미사를 잘 도와주는 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 소속 경웅이형. 우리 반에서 건반을 가장 잘 치는 승용이형. 전산실에서 만기 출소해 사목의 꽃인 본당에서 입이 귀에 걸린 정욱이형. 늘 조용하지만 열심히 사목하는 광휘형. 이탈리아에서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외롭게 공부 중인 동우.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원주민들과 하나 되어 살고 있는 상협이와 창현이. 남미에서 사목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석훈이. 외모와 달리 동창들 사이에서 ‘막내’로 통하는 형묵이. 늘 재밌고 생각만 해도 웃음부터 나오는 춘천교구 소속 일환이.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어학공부중인 윤섭이. 케냐에서 매우 잘 지내고 있을 덕호. 걱정과 달리 페루에 잘 적응하여 사목중인 경환이. 미국으로 남미로 떠돌다 얼마 전 본당사목을 명받고 귀국한 원주교구 소속 정하와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브라질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우라지 촌놈 규준이. 본당에 가서도 자주 아파 고생하고 있는 규현이. 손골성지에서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건희. 나보다 눈이 작지만 순수한 지웅이. 나를 가장 잘 맞춰주는 유곤이. 멋진 목소리로 찬양을 잘 하는 중호. 청소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공부중인 상일이. 무뚝뚝하지만 신자들을 많이 생각하는 정윤이. 누워서 기타를 정말 잘 치는 원주교구 소속 병옥이. 잦은 사고와 좋지 않은 눈으로 고생하지만 모든 일에 열심인 찬헌이.

36명의 소중한 동창 신부님들,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함께 서품 25주년을 향하여 기쁘게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