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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편지 / 이명자

이명자 (데레사·제1대리구 동천성바오로본당)
입력일 2018-09-18 수정일 2018-09-18 발행일 2018-09-23 제 311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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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로부터 편지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요즘은 손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어 잊혀져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문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를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 어릴 적 시골집에도 편지가 자주 왔었는데 결혼을 해서 고생하던 큰언니의 부모님 전상서를 읽어 내려가는 밤이면 등잔불에 비친 부모님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어룽지곤 했지요.

저도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서 살던 때, 가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엄마의 편지를 받게 됐는데 마치 엄마가 오기라도 한 것같이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몇 번씩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 편지들은 지금도 제 기억 안에서 사랑의 울림을 주고 있지요.

그럼 하느님한테서는 언제 편지를 받았을까요?

돌아보면 하느님께서는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제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결혼하여 경북 예천에 살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돌보시던 사춘기 조카들을 저희가 데려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때 제가 그렇게 사랑이 없는 사람인 줄을 마주하고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나름 잘 살아 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영세 전이었음에도 내 영혼의 심연 속에서 간절히 터져 나오던 외침은 “하느님! 당신이 계시다면 저를 구해주십시오. 저에게는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조카애들을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였습니다.

그것이 저와 함께 계신 성령께서 외쳐주신 간절한 기도의 편지였지요. 세례를 받고나서 성경공부에 초대하시는 편지를 받았을 때는 기쁨에 넘쳤고, 구역반장으로 봉사하라는 편지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0여 년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 아주 사소한 유혹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나를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믿음살이가 올바른가?’ 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올라왔지요. 그 의문의 편지를 받았을 때 퍽 당황스럽고 두렵기도 했지만 차츰 알 수 없는 용기가 나면서 참된 믿음살이에 대한 열망이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주보에 공지된 교육과 포스터는 하느님의 편지가 되어 내 영혼 깊숙이 날아왔고 이 땅의 하느님 나라를 함께 일구어가도록 저를 CLC 공동체에 초대해주었습니다.

엄마처럼 사랑으로 꾹꾹 눌러 쓴 하느님의 편지! 여러분도 지금 받고 계시지.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명자 (데레사·제1대리구 동천성바오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