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 박상호 신부

박상호 신부(어농성지 전담)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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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8년 8월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사목생활을 돌아보면 참 많은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또한 지난 시간의 추억들 속에 많은 은인들이 있었습니다.

서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본당 청년회 간부들과 강원도로 MT를 갔습니다. 맛있는 식사와 물놀이, 게임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뒤에서 잘 따라오던 승합차가 갑자기 휘청이더니 뒤집어지면서 다른 차와 부딪쳤습니다. 너무 놀라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제발 주님!’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런데 전복된 승합차 위로 한 명, 한 명 청년들이 빠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청년들이 빠져나왔고 단 한명도 다치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큰 사고였기 때문에 너무나 놀란 상황에서 다치지 않고 무사히 탈출한 청년들이 저에게는 큰 은인이었습니다.

조원동주교좌성당에서는 매일 새벽미사가 봉헌됩니다. 제법 많은 신자분들이 미사에 참례합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힘들게 살아가지만 매일 새벽미사를 거르지 않고 참례하시는 할머니 몇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미사 후 마당에서 인사를 드리고 있으면 가끔 가방에서 신문지로 돌돌 말은 사과 한 알을 꺼내 꼭 신부님 드시라며 건네주시던 분이 계셨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매달 기초수급을 받은 다음 날, 박카스와 옛날 생과자를 구입해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할머니께 당신 드시라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도무지 통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선물이지만 큰 사랑의 마음을 선물하시며 부족한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신 많은 어르신들이 고마운 은인이었습니다.

2010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저는 성탄 전야미사를 봉헌하고 밤 12시를 막 넘겨 사제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사제관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정말 추운 날씨였는데 할아버지는 누런 종이박스 하나를 건네시며 신부님께 이 선물을 드리려고 기다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스에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십자고상이 들어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분이셨습니다. 매일 조금씩 모아서 십자가를 선물로 주시고 다시 걸어서 수원역으로 돌아가려던 할아버지에게 왜 이런 큰 선물을 주시는지 이유를 여쭤봤습니다. 할아버지는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거지 취급을 하는데 신부님은 그러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기억을 돌려봤지만 제가 할아버지를 사랑으로 대한 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고해성사 때 신부님이 자신을 사랑으로 대해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하신 후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추운 겨울밤, 수원역을 향해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늘 따뜻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면서도 더 열심히 사목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너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소중한 선물을 마련하시고 제가 더 열심히 살도록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 역시 은인이심을 고백합니다.

너무 많이 부족해서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아왔지만 엄청난 사랑으로 늘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는 지난 10년의 사목생활이었습니다.

박상호 신부(어농성지 전담)